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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美서 홀연히 돌아온 氣철학자 김용옥

입력 | 1999-03-12 19:08:00


“DJ(김대중대통령)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모두 성취하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오죽 좋을까. 그 비전을 찾을 수 없다. 야당 의원 빼오기를 보면 구태 그대로다. 리더십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총체적으로 리더십 부재다. 책임감 있는 리더십을 가르치지 않는 잘못된 교육 풍토가 문제다. 우리는 너무 평균적인 인간만 키우고 있다. 이것은 말은 그럴듯 하지만 하향 평준화다. 우리 교육엔 또 예술적 상상력이 실종됐다. 그러니 젊은 감독이 만든 영화는 세계 최하수준이다.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영화를 보라. 그 영화가 잘됐든 못됐든 각본을 쓴 사람이 셰익스피어를 줄줄이 꿰차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그런 사람은 찾기 어렵다.”

동양철학자이자 한의사인 김용옥(金容沃·51)이 사회를 향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8월 한의원을 그만두고 홀연히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던 그가 8개월만인 이달초 짐을 챙겨 돌아왔다. 늘 매스컴의 주목을 받아왔던 김용옥의 소리없는 귀국.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 도올서원에서 그를 만났다.

“한의대생들이여, 미국으로 진출하라. 미국에서 한의학의 인기와 침술의 수요는 날로 높아가고 있다. 여기서 아웅다웅하지 말고 미국에 가서 개업하라. 침술을 통해 세계를 뚫어라. 절호의 기회다. 정부도 이를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자신감에 넘쳤지만 전체적인 톤은 차분했다. 뭔가 변화의 조짐이 느껴졌다.

―이렇게 일찍 돌아오다니 심경의 변화라도….

“세계가 한마당인데 떠남과 돌아옴이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겠는가. 하버드대에 있는 동안 각종 프로젝트와 교수직, 강연제의로 연구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차라리 한국에서 연구하고 글을 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럼 앞으로 국내에서 무엇을 할 생각인가.

“올해 안에는 한의학의 철학적 사상적 체계를 담아낸 책을 한 권 낼 것이다. 다른 활동은 하지 않겠다.”

―지금까지 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었고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그동안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그 목적은 얼마만큼 실현됐다고 보는가.

“우리의 20세기는 시종 서양 것을 배워온 역사였다. 남의 연극이나 구경하고 평을 쓰는 놈들만 있었다. 한 놈도 자기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게 현실이었다. 나 역시 남의 것을 배우러 유학을 갔으니까. 그러면서도 우리 것과 남의 것 사이에서 고민했다.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우리 역사의 모델, 사상의 모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상이란 이론적 허구여선 안된다. 실체가 있는 사실적 근거, 즉 과학이 필요하다. 우리의 과학은 한의학과 침이었고 그래서 한의사가 된 것이다. 내 식으로 해보자는 오기와 깡이었다. 물론 나의 이러한 발악이 헛다리 짚은 것은 아닌지 회의도 들었다. 그래도 외길을 걸어왔고 이제 정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10년 안에 결판이 나고 세계가 귀 기울여 줄 것이다.”

물론 그는 백남준을 세계적인 예술가라고 인정했다. 그의 작품은 마음에 들지 않으나 그의 예술관은 높이 평가했다.

―왜 한의학이고 침인가.

“몸은 우주의 집약체이고 가장 실체적인 것이다. 그 몸을 다루는 한의학과 침은 가장 직접적이다. 몸과 침술은 우주에서 가장 명쾌한 팩트(fact)다.”

―김용옥 하면 ‘튄다, 현학적이다’란 말이 따라다니는데….

“우리의 학문세계는 자기 벽에 갇혀있다. 그 울타리를 깨려면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섭렵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러니컬하게도 현학적일 필요가 있었다. 나같은 인간이 더 많아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들은 늘 인간 김용옥을 궁금해한다. 대체 김용옥은 누구인가.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 궁금한 것은 많은데 그걸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고 혼자서 답을 찾기 위해 이것 저것 공부했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지나치다는 지적에 과민 반응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후회스럽기도 하다. 구도자처럼 행동했어야 하는데…. 나같은 사상운동가는 출가승처럼 사는 게 세상에 더 보탬이 될 거란 생각도 해본다. 2년 동안 한의사를 하면서 많은 걸 배웠다. 1만원짜리 한 두 장 들고 나를 찾아온 환자들을 통해 인간관계를 배웠다. 어쨌든 솔직하게 살고 싶다. 비판에 귀 기울이겠다. 소리 없이 잊혀져 가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비판이 나온다는 건 내 젊음이 살아있다는 것 아닌가. 나도 ‘논란꺼리’가 되는구나 생각하면 즐겁다.”

그의 야심은 한국의 모든 것을 통일시키는 사상체계를 만드는 일. 그간의 ‘튐’은 이를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그럼 10년 후 무엇을 할까.

“‘콩나물 대가리’를 할 겁니다. 내 사상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인간은 결국 예술로 돌아가야 할 비극적 존재가 아닙니까.”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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