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운 한국축구’
한국축구가 98프랑스월드컵에서 기대이하의 졸전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아직 벨기에전‘1승’의 기대는 남아있지만 “이대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54년 첫 출전을 제외하고 본선 출전사상 최악의 결과가 예상되는 이번월드컵에서 한국축구는 족히 10년은 후퇴한 전력을 드러냈다.
이 때문에 차기 2002년 대회 개최국으로서 과연 합당한 경기력을 지니고 있느냐에 회의를 갖는 여론이 드세다.
분명 세계의 벽은 높았다. 한국축구의 한계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온 국민은 승리를 일궈내지 못했다는데 아쉬워하기 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86년 멕시코, 94년 미국대회. 그때에도 한국은 1승 및 16강진출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축구는 당시 국민으로부터, 세계인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멕시코대회에서는 우승팀 아르헨티나와의 경기에서 월드컵 출전 첫골을 뽑아내며 1대3으로, 전 대회 우승팀 이탈리아에는 선전끝에 2대3으로 각각 졌지만 세계축구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또 94미국대회에서는 섭씨 40도를 웃도는 최악의 경기 여건속에서 유럽의 강호 스페인에 2골을 먼저 내주고도 2골을 따라잡는 기적적인 무승부를 일궈냈고 우승후보이던 독일전에서는 3골을 내준 뒤 엄청난 막판 투혼을 발휘해 2골을 만회하는 근성을 보여 민족의 끈기를 세계에 알린 쾌거로 기록되기도 했다.
이같은 근성의 축구는 모두 어디로 갔는가.
멕시코전에서 월드컵출전사상 첫 선제골을 기록하고도 선수기용문제와 전술의 부재를 드러내며 1대3으로 역전패한데 이어 21일 네덜란드와의 2차전에서는 무기력한 플레이로 일관하다 무려 5골을 잃는 수모를 당하며 주저앉는 치욕을 당하고 말았다.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에 나선 일본. 비록 한국과 똑같은 2패를 기록하며 16강진출의 꿈은 무산됐지만 경우는 분명히 달랐다. 일본은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 등 세계적인 강호들과 당당히 겨뤄 연패를 하고도 박수갈채를 받았다. 바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이는 월드컵을 향한 국민적 여망을 달성하기 위해 오랜 세월 꿈나무를 키우는 한편 붐조성 등으로 발전의 토양을 굳혔기에 가능했던 것.
한국축구는 어떤가. 통산 5회진출에 4회 연속진출이라는 오만함으로 변화를 추구하지 않은 결과 오늘의 치욕을 불러들였다면 과언일까.
남들은 단 한번 출전하기도 어려운 본선진출을 다섯번이나 이루고도 노하우를 축적하고 발전시키기는 커녕 오히려 퇴보의 길을 걸은 것은 왜일까.
1년6개월간의 대비훈련. 수십억원의 비용을 들이며 전력을 다지는데 부족함이 없는 긴 시간동안 과연 무엇을 했는지….
월드컵은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니라 인류의 축제로, 각민족의 힘을 모으는 대륙간 민족간의 스포츠행위로 승화돼 불린다.
때문에 단순한 승패의 차원을 떠나 민족의 우열을 가리는 무대이기도 해 일단 월드컵본선에 나서면 민족성을 과시하는 일도 대단히 중요하다.
지고도 큰 박수를 받는가하면 패한 뒤 돌이킬수 없는 치욕을 당하는 것은 바로 반드시 축구실력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할 한국. 그때 민족의 저력을 세계에 과시해야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과거 한국축구는 각종 대회에서 기대이하의 졸전을 벌였을 때마다 똑같은 과제를 떠안았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별반 없다.
이제는 다르다. 2002년 대회를 개최해야 하는 주역의 입장이다.
경기력의 질을 높이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 이를 위해 많은 유망 선수가 선진축구를 배우고 익혀야 함은 물론이다.
일본도 그랬고 중동축구도 그랬다.
이와 함께 스포츠가 국민 사기진작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며 그것이 국가 경쟁력에서 얼마나 큰 변수로 작용하는지를 정책당국자들이 새삼스레 느껴야할 시점이다.
〈이재권기자〉kwon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