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98시즌 개막전이 치러진 호주 멜버른시 앨버트파크 경주장. 20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으니 규모와 시설이 엄청날 것 같지만 실제는 가설경주장이다.
앨버트파크는 파크라는 말이 뜻하듯이 평소에는 호숫가 산책로와 골프장이 있는 전형적인 시민공원이다. 단지 F1 경기가 열리기 한달전 공사를 시작, 경기가 끝난 뒤 시설물을 철거하기까지 두달가량만 자동차 경주장으로 변신할 뿐이다.
경주가 치러지는 도로 역시 호수가를 순회하는 일반도로를 막아서 사용한다. 3만명을 수용하는 그랜드 스탠드를 비롯, 관람석도 모두 조립식이다. 골프장도 이 기간중 대변신을 한다. 골프클럽은 관중을 위한 매점으로 바뀌고 카트는 대회 운영차량으로 사용된다.
세계적 스포츠 이벤트이지만 멜버른시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낸다는 ‘마케팅’ 원칙을 철저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빅토리아주의 주도인 멜버른은 신대륙 호주에서 가장 유럽적인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곳. 1800년대에 지어진 유럽식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곳곳에 있고 경찰들이 아직도 말을 타고 순찰을 돈다.
이처럼 조용한 도시가 어떻게 ‘시끄럽고 법석을 떠는’ 자동차경주를 유치할 수 있었을까. 사실 멜버른이 F1을 유치한 것은 96년부터. 이제 겨우 세번째다. 그전엔 남호주의 애들레이드시에서 개최됐었다. 하지만 부실한 운영으로 역시 남반구에 있는 남아공에 개최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하자 멜버른이 대신 나선 것.
멜버른시는 호주오픈테니스와 멜버른컵경마 등 굵직굵직한 대회를 치른 경험을 되살려 F1을 성공적으로 유치, 지난해엔 개최 2년만에 가장 모범적인 대회개최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투자를 적게 했으면서도 경기장이 도심과 가까운 곳에 있고 기존 도시기반시설을 그대로 이용하는 장점을 최대한 살린 게 주효했기 때문. 유럽이나 일본의 경기장들은 시설은 훌륭하지만 외곽에 있어 관중들이 숙박 등에 불편을 겪는다.
더구나 전차의 일종인 ‘트램’을 경기기간중 무료 운행하는 등 방문객들에게 최대의 편의를 제공한다. 호주는 해마다 이런 스포츠이벤트 개최를 통해 국민총생산의 1%에 해당하는 8조원을 벌어들인다.
〈멜버른〓전 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