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정부 세종로청사와 과천청사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고건(高建)총리가 비상장관회의를 갖고 각 부처는 동요하지 말고 업무에 임하라고 지시했지만 대부분의 공무원들은 일손을 놓고 사실상 ‘행정 휴업’에 들어갔다.》
▼ 통일원 ▼
이날 장관의 이취임식을 취소하고 김석우(金錫友)차관 주재로 실국장회의를 열었으나 새 장관 취임시 인수인계작업 문제 등을 재점검하는데 그쳤다. 한 당국자는 “정부직제개편으로 회담사무국 일부 협력관과 정보분석실 분석관, 장관 비서실장 등이 없어지게 돼 인사가 시급하지만 인사권자(신임장관)가 없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대북정책의 기조에 맞춰 그동안의 대북정책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정책을 마련해야 하겠지만 신임장관의 취임이 지연돼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보처 ▼
폐지부서여서 신임장관과 함께 이취임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오인환(吳隣煥)장관은 25일 오후 이임식까지 마쳤다. 이 때문에 오전장관은 이날 ‘다시 출근하기가 어색하다’는 이유로 출근하지 않았고 고총리도 이해했다는 후문.
한편 예산집행이 25일자로 중단돼 26일부터 신문구독이 중지되고 케이블TV도 철거된데다 복도에는 폐기할 서류와 책자가 수북이 쌓여 썰렁한 분위기.
▼ 법제처 ▼
총리인준 지연과 관련된 각종 유권해석으로 분주했다. 송종의(宋宗義)법제처장은 “아침에 각 부처 장관에게서 출근여부를 놓고 문의전화가 걸려와 ‘대통령만 바뀌었을 뿐 현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한편 홍사덕(洪思德)정무1장관도 25일 이임식을 마쳤으나 이날 급히 출근했다.
▼ 외무부 ▼
외교통상부로 확대개편되는 작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특히 통상교섭본부의 경우 3개국과 13개팀을 신설하고 기존 통산부와 재경원으로부터 50여명의 직원을 받아야 하는데 이 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
또 직제개편에 따른 인사는 물론이고 정권교체 때마다 재신임을 받기 위해 특1, 2급 공관장들이 관례적으로 내던 직위사직서 제출도 보류됐다.
▼ 국방부 ▼
지휘명령을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군조직의 특성상 새 장관 취임이 지연되면 그만큼 위기상황에 대한 일사불란한 대응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현 공군참모총장 임기가 내달 6일로 끝나기 때문에 ‘국정공백’이 장기화할 경우 신임장관이 차기공군총장 인선에 관여하지 못하는 ‘파행인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걱정하고 있다.
▼ 내무부 ▼
조해녕(曺海寧)장관은 이날 오전 실국장회의를 연 뒤 “업무공백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했으나 행정자치부로 출범하면 민방위국에 흡수될 예정인 재난관리국 등 조직개편 대상 부서 직원들은 일손을 놓고 불안해 하고 있다.
특히 3월초까지 마무리해야 할 부산 서구와 경북 의성 등 4개 지역 국회의원 보궐 및 재선거일정 공고작업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한 고위간부는 “만약 신임장관을 임명하지 않은 채 정부조직법이 공포되면 내무부는 ‘유령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 교육부 ▼
새학기 시작을 앞두고도 올해 치르는 99학년도 대입전형기본계획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수능시험 입시일자 등 입시관련 주요내용을 담은 대입전형기본계획은 고등교육시행령에 학년도 개시일 전인 2월말까지 공표하도록 되어 있어 교육부는 새정부 출범 즉시 신임장관의 결재를 받아 발표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만이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 법무부 ▼
김종구(金鍾求)장관이 장관실을 지켰으나 일부 직원들은 “이런 상태가 다음주까지 계속되는 것이 아니냐”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법무부의 한 검사는 “다행히 검찰은 검찰총장이 지휘하고 있고 교정행정은 각 교도소장이 맡고 있어 당장 법무행정에 차질이 빚어지지는 않고 있다”면서 “그러나 국정공백이 계속되면 검찰의 정기 인사가 늦어지는 등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보건복지부 ▼
식품의약품안전본부가 차관급인 식품의약청으로 독립하고 복지부내 일부 부서가 식품의약청으로 이관되는 데 따른 업무가 전혀 추진되지 않고 있다.
특히 식품 및 약품의 수출입과 인허가 업무를 맡고 있는 식품진흥과와 약무진흥과 직원들은 이날도 이사준비를 하면서 업무를 보고 있어 차질을 빚고 있다.
한 직원은 “20년 공직생활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이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 국민 보건업무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것 같다”고 말했다.
▼ 노동부 ▼
다음달 1일부터 근로자 5인 이상 사업장으로 고용보험대상이 확대되지만 그 일을 맡을 인원을 충원하지 못해 걱정하고 있다. 정부조직개편에 따라 산업안전국 직원을 감축하는 대신 고용보험인력을 1백20명 늘리기로 했지만 인사를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따라서 고용보험 확대 실시를 이틀밖에 안남긴 26일에도 누가 고용보험 담당자로 인사이동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업무 차질이 예상된다.
▼ 환경부 ▼
다른 부처에 비해 큰 변화가 없어 당장 큰 영향을 받고 있지는 않지만 대규모 사업계획의 추진에 지장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24일 밤 윤여준(尹汝雋)장관 환송회를 갖고 새 장관에게 업무보고할 준비를 해왔던 국장급이상 간부들은 조금은 맥이 풀린 분위기.
윤장관은 26일 총리이임식에 참석한 뒤 환경부에서 이임식을 갖고 28일 아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으나 비행기예약 날짜를 연기했다.
▼ 경찰청 ▼
차기 경찰청장 임명도 연기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고위 간부들은 지난달말로 예정됐던 정기인사가 새정부 출범이후로 늦춰져 가뜩이나 기강이 해이해지고 있는데다 신임 경찰청장 임명까지 늦춰질 경우 자칫 민생치안에 구멍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승진과 전보 대상 간부들 대부분이 이날 하루종일 차기 경찰청장으로 누가 올 것인지와 경무관급 이상 승진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일손을 거의 놓고 있는 모습.
〈정치부·사회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