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동아일보사로 걸려온 한통의 전화는 취재기자를 긴장케 했다. 어머니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한 중학생이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는 제보였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이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다. 어딘지 작위적이라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그사이이 소년의 이야기는 다른 언론을 통해 보도되기 시작했고 어느새 많은 시민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지난 16일. 자살하려 한 것이 사실인가를 검증하던 기자는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년의 어머니 필적으로 된 똑같은 유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난소종양 치료를 위해 아들을 시켜 ‘자살미수극’을 벌인 뒤 아는 남자를 시켜 언론에 제보한 것이다. 어머니는 어느 종합병원의 도움으로 무료수술도 마친 뒤였다. 기자는 고민에 휩싸였다. 세상의 눈시울을 붉힌 소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무너뜨리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소년과 어머니를 돕기 위해 정성어린 성금을 보낸 수많은 독지가들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이 사건의 ‘진실’을 보도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언론의 사명은 사라진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소년의 ‘효심’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뒤 엄청난 성금이 답지한 방송사와 소년의 학교는 난감한 입장이 됐으나 이미 전달해준 성금을 ‘회수’할 생각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무료시술을 해준 병원측은 ‘어쨌거나 완치될 때까지 치료를 해주겠다’며 문제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건’은 ‘감동’에 목말라 있는 세태를 적나라하게 반영한 측면이 있다. ‘조작된 감동’이 아닌 ‘진실의 감동’이 우리주위에 샘솟듯이 생겨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박정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