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시론]권영설/인수委의 직무범위 법제화하자

입력 | 1998-01-07 20:44:00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교체는 그 자체 만으로도 엄청난 국가적 대사(大事)다. 대통령직이 갖는 그 압도하는 권력적 우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교체에 수반하는 정치적 공백이 으레 문제되기 때문이다. ▼ 지나친 행정간섭은 곤란 ▼ 군주제에 있어서는 그 세습주의의 결과, 후임자를 뜻하는 세자가 미리 책봉되어 있고 의원내각제의 경우는 예비내각이 마련돼 있어 권력의 공백과 혼란이 덜 심각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대통령의 임기만료를 두달남짓 남겨둔 시점에서야 비로소 후임자가 선거로 결정되는 대통령제에 있어서 그 교체과정에서의 정치적 공백과 혼란이 없을 수 없다. 특히 이번 우리의 경우처럼 여야가 뒤바뀌는 정권교체기가 사상 최대의 경제위기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더 미묘하고 어려운 문제들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통령제 정부를 2백10년 동안이나 운용해 오고 있는 미국도 대통령직 교체 전담기관을 법제화한 역사는 35년밖에 되지 않는다. 평화적 정부교체의 경험이 고작 세번에 불과한 우리에게 정부 교체에 관한 제도의 미비나 운영의 미숙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할는지도 모른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둘러싼 최근의 논란도 따지고 본다면 그 동안의 준비부족 탓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직 교체의 모형을 이루는 미국의 경우 1963년 ‘대통령직 교체법’을 제정한 이래 두번의 개정을 거쳐 1988년 대체입법(代替立法)을 했는데 모두 7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대단히 기술적이고 간략한 내용의 법률이다. 당선자에게 제공될 인력과 예산 및 기부금 수령의 제한과 그 공개 등을 다루고 있을 뿐이다. 이에 비해 법률이 아닌 명령인 우리 나라의 인수위설치령은 제2조에서 7개의 직무를 열거하고 있어 미국의 대통령직 교체법과 크게 대조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 주요정책의 분석 및 수립’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설정하기 위한 준비’와 같은 대단히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직무를 규정하고 있어 지금과 같은 혼선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설치령상의 직무범위가 잘못 설정되었거나 지나치게 넓어 구체적이지 못한 것이 문제다. 미국의 대통령직 교체기구의 경우 주된 임무를 행정적 인수인계의 원활화에 두고 있다. 기존 정책의 개폐와 새로운 정책의 개발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인수팀은 연구기관에서 마련한 점검목록에 따라 효율적으로 인수업무를 수행한다. 이같은 예(例)는 우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인수위’가 사문(査問)기관이나 감사기관 같이 행정간섭을 해서는 안된다. ▼ 秘線조직에 의존 말아야 ▼ 교체준비를 잘한 대통령이 재임중 성공적이었음은 미국 대통령제에서 익히 입증된 바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립적이고 공공적인 연구기관에 의해 교체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대안적 정책개발도 여기에 맡겨야 한다. 교체준비를 비선(秘線)조직과 그 활동에 의존함에 따라 불거진 현정부 초기의 시행착오와 ‘김현철(金賢哲)사건’은 한번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미 5년전 지금과 같은 ‘인수위’ 설치령의 법률적 근거가 없음이 국회에서 문제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고급공무원을 인수위에 굳이 파견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법률제정이 시급함은 물론이며 직무범위를 둘러싼 혼란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권영설 (중앙대교수/법학)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