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나라를 온통 뒤흔든 한보사건이 대법원 확정판결로 11개월만에 사법적 마무리를 지었다. 이 사건의 주범인 정태수(鄭泰守) 전한보그룹총회장은 징역 15년의 중형이 확정됐고 국회의원 4명이 의원직을 상실했다. 관련자들의 죄값이 결코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국가적 재앙으로까지 이어진 이 사건의 종결을 지켜보는 국민은 미진(未盡)의 안타까움을 떨쳐버릴 수 없다. 「몸통」을 포함한 한보의 진상은 아직까지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다. 검찰 수사 및 기소과정에서 법망을 빠져나간 정치인들은 정치판에 건재하다. 검찰은 막강한 권력이 배후에 도사린 대형 경제범죄수사에서 홀로 서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냈고 법원은 검찰이 기소한 것 이상을 재판할 수 없었다. 이 사건은 수사와 재판과정을 통해 기업인과 정치인들에게 크나큰 교훈을 남겼다. 정 관계에 막대한 뇌물을 살포해 천문학적인 대출을 받아 방만하게 기업을 벌이다가 국가경제를 파탄으로까지 몰고간 정태수같은 기업인을 재계에 다시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된다. 한보식 경영행태가 바로 30여년 허리띠를 졸라매며 가꾸어온 경제를 곤두박질시킨 주범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사태 이후 전세계 언론이 정경유착에 의한 대기업의 은행대출 독점과 무분별한 확장이 한국경제의 최대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정치자금의 성격을 지닌 돈이더라도 직무 관련성이 인정되면 포괄적 뇌물죄가 성립된다고 밝혀 「떡값」이나 「활동비」 등 음성적인 정치자금을 처벌할 수 있는 판례를 확립했다. 이를 계기로 기업에서 받은 검은 돈으로 정치를 하는 부패한 정치관행을 뜯어고침으로써 기업을 권력의 사슬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검은 돈 정치는 이제 더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