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11월부터 89년1월까지 주한미국대사로 근무했던 제임스 릴리 前대사가 16일 「한국민들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격려하는 특별기고를 동아일보사 워싱턴특파원을 통해 보내왔다.》 내가 한국에서 근무한 기간은 길지 않았으나 모두 세 차례의 위기를 겪었다. 하나는 군사적 위기였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위기였으며 마지막은 지금 펼쳐지고 있는 경제적 위기다. ▼ 군사 정치위기 넘겨 ▼ 첫번째 위기는 전쟁중이던 1952년 10월에 있었다. 당시 나는 혈기 넘치는 젊은 미군장교로 한국에 왔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 상공을 날면서 나는 산산이 부서진 마을들과 벌거숭이가 된 산, 그리고 포화에 짓이겨져 길거리에 팽개쳐진 차량들을 보았다. 서울은 주인이 여러번 바뀌면서 건물들은 부서지고 사람들은 굶주림에 떨었다. 그러나 한국은 끝내 전쟁에서 이겼다. 전쟁의 흐름을 바꾼 것은 한국민의 의지와 용기였다. 1986년 나는 주한미국대사가 되어 다시 한국에 왔다. 나는 달라진 한국을 보았다. 서울은 역동적인 도시가 됐고 사람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러나 정치적 위기가 바로 가까이에 있었다. 민간의 탈을 쓴 권위주의적군사통치가 자행됐고 한국민은 부정선거, 이름뿐인 야당, 억압된 언론자유, 정실 인사에 지쳐 있었다. 한국민은 다시 일어섰고 변화를 요구했다. 군부지도자들은 굴복했고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역사적 전환이 있었다. 6개월이란 짧은 기간에 헌법이 다시 쓰여졌고 새로운 선거법이 만들어졌으며 정치범들이 풀려났고 자유로운 선거가 실시됐다. 그리고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그것은 35년전 한국군이 전쟁에서 이뤄냈던 기적에 버금가는 정치적 기적이었다. 그리고 이제 97년. 한국민은 혹독한 경제적 위기 앞에 서 있다. 일부 위정자와 기업인들의 경제 왜곡과 조작이 한국을 재난의 벼랑끝으로 몰아냈다. 정치인과 기업인의 유착, 밀실거래가 전체 금융시스템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빠른 성장률 산업화 기술혁명 등의 업적 아래서 악성 재정거래 뇌물 보조금 특혜대출 보호주의가 끊임없이 금융체제를 부식해 들어갔다. 이같은 경제 위기 속에서 맞을 장래는 더 험하고 고통은 더 클 것이다. 그러나 한국민의 오랜 친구로서 나는 한국이 동맹국 및 우방의 도움과 함께 이같은 어려움을 떨쳐버리고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민은 민주화를 통해 진정한 정치적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경험했다. 한국의 지도자들은 오래전에 금융개혁이 단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년전 금융실명제가 통과되면서 투명성이 높아지기는 했다. 세계화도 진전이 있었다. 두 전직 대통령도 비리로 투옥됐다. ▼ 개혁통해 다시 일어설 것 ▼ 그러나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경제위기는 본질적이고 거센 개혁을 통해 극복되어야 한다. 나는 한국민이 예전처럼 뭉치기만 하면 이 정도의 위기는 극복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나의 사랑하는 한국민에게 성공은 다시 찾아 올 것이다. 제임스 릴리 (前 주한美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