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금융기관들의 정리가 임박한 가운데 재벌기업들도 긴박한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국제통화기금(IMF) 등을 통해 재벌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압력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도 재벌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기업들은 이에 따라 최근의 경제책임 공방보다 우선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판단, 정부의 특단대책을 강도높게 요구할 방침이다. 30대 그룹 기획조정실장들은 3일 전경련회관에서 회의를 갖고 경제위기 해소를 위한 정부의 대책마련을 다시 한번 촉구하면서 재계의 구조조정에 대한 입장도 정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관계자는 『지금은 얼어붙은 자금시장을 푸는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현안』이라며 『재벌기업들이 뼈를 깎는 마음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정부도 기업활동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 삼성 LG 대우 등 주요 그룹들도 정부가 이번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재벌총수와 기조실 임원 등을 이사로 간주, 상법상 책임을 규정하는 등 경영투명성 확보방안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방한중인 IMF협의단은 금융산업의 개편과 함께 부실대기업에 대한 조속한 정리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 진로그룹 등 사실상 부도난 대기업들에 대해 정부가 개입하지 말고 제삼자 인수 등 시장기능에 따라 정리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재벌기업들의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내부자거래 관행 △기업회계장부의 불투명성 등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우리 정부에 시정을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지난 4월 현재 64조3천억원으로 자기자본 대비 91.3%에 달한 30대 재벌그룹의 채무보증규모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는 것. 정부도 이 기회에 대기업들의 차입경영과 높은 부채비율을 반드시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또 기업의 경영투명성을 높이고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30대 재벌그룹 총수들이 평균 8%대의 가족지분율과 34%대의 계열사 지분율을 토대로 기업지배권을 행사하면서 선단식 경영을 행사하는 폐단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이희성·박현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