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7월 이후 동남아 각국과 한국을 차례로 강타한 금융위기는 「국경없는 지구촌 경제」를 실감케 한다. 일본의 경기불황 및 금융기관 연쇄도산의 파장과 충격 또한 자국에만 그치지 않고 세계경제에 광범위하게 미친다. 나무가 크면 주변의 그늘도 깊듯이 일본경제 적신호의 첫 피해자는 한국 등 아시아 경제권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아시아의 주식이나 채권은 팔고보자는 「아시아 팔기」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아시아 통화가치 및 주가가 동반하락해 구미 투자가로부터 함께 외면당하는 이른바 「인접효과」가 나타난 셈. 아시아 선두주자인 일본의 금융위기는 이처럼 「아시아 신화」의 붕괴를 재촉하고 있다. 관료가 쥐고 흔드는 관치금융, 모든 금융기관을 도산 없이 끌고 가는 호송선단(선단)식 경영으로 대표되는 일본식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붕괴는 비슷한 구조를 지닌 한국에도 큰 부담을 준다. 한국 증시에의 영향도 치명적이다. 한국 증시 종합주가지수가 24, 25일 연이어 10년만에 최저치로 떨어지자 벌써 「야마이치증권 도산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조달에도 애로가 예상된다. 일본은 한국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발행하는 금리연동부채권(FRN)의 20∼25%를 소화하는 최대매수자이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마당이니 신규대출이나 기일연장을 기피할 수도 있다. 한국이 요청한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관련한 일본의 입장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급박한 사정 때문에 일본이 발을 빼려할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한국은행 도쿄사무소 이인식(李仁湜)부소장은 『한국의 금융불안을 방치하면 일본이 바로 타격을 입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울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일본의 금융위기는 미국과 유럽의 금융시장에도 부담이다. 일본은 미국 국채(國債)의 가장 큰 매수세력. 자금이 쪼들리면 일본은 보유채권을 파는 수밖에 없고 이는 당장 미국채권가격을 떨어뜨린다. 서구자본들이 일본에 대한 채권투자를 기피하면 일본에서 돈이 빠져나가면서 엔화가치가 떨어진다. 또 교역부진으로 서구의 주가가 동반하락하면 금리는 오르고 기업부담은 커지며 경기는 후퇴한다. 야마이치증권 도산 후 뉴욕증시의 주가하락이 이를 보여준다. 국제금융시장은 일본정부의 금융위기 대응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얼마나 신속하고 적절한 대책이 나오느냐 여부에 따라 파장과 충격이 「일과성」일지 「치명적」일지, 「국지적」일지 「세계적」일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끝― 〈허승호기자·도쿄〓권순활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