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회장단이 13일 금융실명제 전면유보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실명제의 대대적인 보완을 비롯한 특단의 경제회생책을 얻어내기 위한 강공(强攻)으로 해석된다. 전경련은 당초 지하자금 양성화를 위해 무기명 장기채권의 발행을 건의할 예정이었으나 이날 회의에서 실명제 유보 건의라는 강경방침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는 93년부터 실시된 실명제가 자금시장을 왜곡시켜 기업활동을 어렵게 한다고 주장해왔으며 최근 신한국당이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총재의 비자금을 폭로하자 『실명제의 기본인 비밀보장 조치가 무너졌다』며 포문을 열었다. 손병두(孫炳斗)전경련상근부회장은 『예금에 대한 비밀보장 조치가 마련돼있지 않아 실명제 실시후 민간저축률이 27.1%에서 23.7%까지 떨어지는 등 자금흐름의 맥이 끊겼다』며 금융실명제를 현 경제난의 주범(主犯)으로 몰아붙였다. 전경련의 주장대로 실명제 이후 지하자금규모(추정)가 30조원까지 불어나고 93년 상반기에 15억7천6백만달러였던 해외여행 경비가 올 상반기에는 36억9천2백만달러로 두배 이상 늘어났다. 경상수지 적자 규모도 11억7천만달러에서 1백2억4천만달러로 늘어났으며 어음부도율 역시 0.11%에서 0.31%로 높아졌다. 경제 악화가 실명제 탓이라는 전경련의 주장에 공감하는 목소리는 많지 않다. 특히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재계가 경제난을 불러온 자신들의 경영실책을 호도하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어쨌든 전경련이 경제위기 타개를 명분으로 실명제유보를 내세움에 따라 실명제가 폐지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제도보완 등을 비롯한 긴급처방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영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