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드중
미로(迷路)가 돌아오고 있다. 데카르트와 뉴턴의 등장 이래, 이성(理性)이 쏘아올린 「직선과 투명성」의 위세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듯했던 미로. 그 미로가 마침내, 미궁(迷宮)처럼 얽히고 설킨 반도체 칩과 인터넷 시대에 복권(復權)을 주장하고 나섰다. 영림카디널에서 펴낸 「미로―지혜에 이르는 길」. 저자 자크 아탈리는 고대 크레타섬의 미노소스 미궁에서 현대의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미로의 역사와 이에 대한 인식의 변천을 더듬으면서 삶의 한가운데에 놓인 미로의 의미를 탐색한다. 「지나치게 곧은 길은 우리를 막다른 골목으로 이끈다. 미로 한가운데서 직선적인 논리는 출구없는 벽과 부닥칠 뿐이다. 미로의 출구, 그 터널의 끝에 도달하고 싶거든 미로의 한가운데로 나아가라. 그 때 비로소 우리는 미로를 만든 이의 마음과 만날 수 있다」. 대체 미로란 무엇인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적어도 하나의 입구와 출구를 갖고 있지만 진행형의 어떠한 표지도 없는 길. 미로는 불투명한 장소이며 길을 찾는데 어떠한 법칙도 없다. 그곳에서는 우연과 의외의 상황이 지배하고 순수이성이 무릎을 꿇는다. 저자는 세계 어느 문명에서나 미로와 같은 형상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며 미로는 세상의 질서에 눈뜬 인류가 최초로 이를 유형화한 것이라고 한다. 인류는 미로 속에 담겨 있는 예측가능한 것들과 동시에 예측불가능한 것들을 통해, 그들이 느끼고 깨달아가는 세상을 묘사해 왔다는 것. 「미로를 가로지른다는 것은 바로 세계를 가로지르는 것이며 결국 미로여행은 인생을 가로지르는 모험과 도전으로 읽힌다. 미로를 탐구하는 동안 우리는 잠시, 인생의 비밀을 엿보기도 하며 또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미궁 속에서 삶의 무기력에 빠지기도 한다」. 미로는 어느 문명에서나 하나의 상징체계와 신화(神話)로서 강력한 통신수단을 이룬다. 문자 이전의, 문자 이상의 언어. 저자가 미로에 매혹되는 이유다. 현대사회에서 갈수록 미로화하는 도시. 시장경제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통로, 기업과 행정부의 조직, 대학의 커리큘럼도 미로처럼 얽혀든다. 이제 모든 부와 권력은 미로 깊숙이 숨어 들고 있다. 저자는 미로여행에서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우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더욱 가슴에 와닿는 것은 「과정으로서」 미로 그 자체의 미덕(美德)이다. 「우리는 미로 한가운데서 비로소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공간속에 펼쳐지는 것임을 느낀다. …미래의 지혜는 시간을 버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시간을 채우고 경험하고 그것을 찬찬히 살펴보는데 있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일직선」으로 내닫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 책은 미로여행이 그런 것처럼, 보이지않는 「중심」을 향해 쉬지 않고 전진하면서 가끔은 길을 잃기도 하고 제자리로 돌아오기도 하는 인내력을 요구한다.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