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드중
15일 개봉하는 곽지균감독의 「깊은 슬픔」은 못 이룬 사랑으로 이 강산 지수화풍(地水火風)이 되어 사라져간 뭇 연인들의 추억을 일깨우는 영화다. 그 추억은 고향에서 동심을 함께 나누던 세 남녀 은서 완 현세의 삼각형 속에서 되살아난다. 고향을 등진 은서(강수연)가 바이올리니스트, 현세(황인성)가 화가의 길을 걷는 반면 완(김승우)은 주먹들의 거리로 굴러든다. 두 사랑의 덫에 걸린 은서는 빛을 좇는 해바라기처럼 완을 향하지만 암흑가에서의 성공을 좇는 완은 그 사랑을 거부한다. 곽감독은 말한다. 『완의 캐릭터는 작가 신경숙씨의 원작소설과는 다르지요. 여태껏 멜로에 치중해온 저로선 모험을 걸어봤습니다. 처음으로 액션장면을 만든 것이지요』 그것은 현란한 춤과 같은 폭력이다. 홀몸으로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가는 김승우의 몸놀림은 화려하다. 던진 몸을 공중에서 돌리는 급회전, 사방팔방으로 직진하는 팔다리. 찬란하기까지 한 그의 춤은 처음에는 은서를 위한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여자 보스 효선(배종옥)을 위한 충성으로 변해버린다. 원작 소설의 문체미학을 살려내는 것은 은서와 현세의 내면적 연기. 여기에 곽감독 특유의 영상미가 보태졌다. 그는 아직 60년대풍의 고즈넉한 풍광이 남아있는 전남 해남을 세 사람의 고향으로 삼아 향수를 자극한다. 툇마루와 골기와, 버스 정류장 옆의 느티나무, 흰꽃 핀 무밭과 갈대숲 언덕…. 수십차례 촬영지를 옮긴 연출진에게는 행운이 따랐다. 은서에 대한 사랑을 못 이룬 현세의 심경을 찍을 때는 태풍이 불어 보리밭이 심하게 일렁였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살을 결심하는 은서 곁에 있는 부러진 고목나무는 촬영 전날 벼락을 맞아 쓰러졌다. 이같은 감천(感天)은 지성(至誠)의 결과다. 현세의 테마곡은 도니제티의 오페라에 나오는 「남 몰래 흐르는 눈물」. 촬영직전 홀로 자기암시를 거는 습벽이 있는 황인성은 외로운 사랑을 완성하려다 결국 은서에 대한 좌절감을 폭발시키는 역할을 무리없이 해냈다. 개봉 3일전,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 〈권기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