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순위 24위의 해태그룹이 부도를 내고 계열기업에 대한 화의 및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재계 순위 25위의 뉴코아그룹도 금명간 화의나 법정관리신청이 불가피하리라는 보도다. 기아문제 처리의 가닥이 잡히면서 다소 진정되는 듯했던 대기업 연쇄부도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올들어 부도를 내고 부실기업 정리절차에 들어간 재계랭킹 50위 안의 중견기업만도 한보 삼미 진로 대농 한신공영 기아 해태 등 7개에 이른다. 해태의 좌초는 두가지 이유에서 충격이다. 기아사태만 해결되면 대기업 추가부도는 없을 것이란 기대가 무너졌고 연말까지는 더 이상 대기업 도산은 없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공언이 깨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우려는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가 자금시장의 불안을 가속하고 금융기관 부실을 심화시켜 기업과 금융이 공멸하지 않느냐는 위기감의 증폭이다. 해태그룹 부도는 앞서 도산한 다른 대기업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무분별한 기업확장, 비정상적 차입경영, 자구(自救)노력의 실기(失機) 등이 그것이다. 그같은 점에서 기업 부도는 전적으로 기업 책임이다. 그러나 정책의 실패 탓도 크다. 제대로 기능하지도 않는 부도유예협약과 뒤이어 내놓은 협조융자협약은 부실기업 회생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국민경제 전체의 주름살만 깊게 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뼈를 깎는 자구노력이 최우선 책무다.그렇지 않고는 회생은 불가능하다. 정부도 당장의 부도도미노 현상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겠지만 부실기업처리의 일정한 기준과 원칙을 세워야 한다. 언제까지 국민 돈으로 부실기업 살리기에 나설 수는 없다. 차제에 기업퇴출을 효율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관련제도의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