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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리양 유괴]『살아올 줄 알았는데…』아빠의 눈물

입력 | 1997-09-12 20:07:00


지어준 이름보다 더 예쁘게 자란 딸. 그 딸이 밝게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날 마음껏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을 기약하며 아빠는 묵묵히 한숨과 절망의 눈물을 가슴속 깊이 쌓아두었다. 그러나…. 박초롱초롱빛나리양(8·W초등학교 2년)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12일 오후 1시경. 서울 서초구 잠원동 G상가 1층 5평 남짓한 자신의 일터에서 손님을 맞던 나리양의 아버지 박용택(朴龍澤·41·아파트수리업)씨는 참고 참았던 그 모든 눈물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현관 바로 옆에 있는 나리의 방문을 출근할 때마다 열어봤죠. 그 때마다 생각했어요. 「퇴근해서 다시 이 방문을 열면 우리 나리는 언제나처럼 책상에서 숙제를 하고 있을거야」』 나리양이 유괴된 지난달 30일 이후에도 박씨가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오전 6시반 출근, 밤 9시반 퇴근」의 평상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딸의 생존에 대한 이같은 강한 믿음 때문이었다. 「일하는 손 따로, 나리를 걱정하는 마음 따로」의 하루를 보내고 늦은 밤 현관문 앞에 다시 설 때면 「혹시나」하는 기대에 가슴이 뛰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 눈물과 한숨으로 범벅이 된 아내의 절망과 집안 곳곳을 감싸고 있는 싸늘한 기운을 느끼는 순간 박씨는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리곤 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그런 생활이 14일째인 12일 이른 아침. 박씨는 경찰로부터 『유괴범 용의자 1명이 잡혔으니 집에서 결과를 기다리라』는 전화를 받고 부인과 손을 맞잡고 다짐했다. 『나리만 살아 있다면, 나리만 돌아온다면 모든 죄를 용서하고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하리라』고. 박씨는 변함없이 일터로 향했지만 부인 한영희씨는 오전 10시경 임신 8개월째라는 유괴범용의자가 압송돼 오는 서울 서초경찰서로 달려가 본관 계단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 기도를 시작했다. 한씨는 경찰에 둘러싸인 채 멀어져 가는 용의자 전현주씨(28)를 향해 절규했다. 『당신을 원망하지 않아요. 우리 나리 어디 있는지만 가르쳐 주세요』 그러나 한씨의 목소리는 실신상태로 끌려가는 전씨에게 전해질 수 없었다. 그로부터 약 2시간 후 한씨는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딸의 소재를 알게 됐다. 하지만 웃는 얼굴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 믿었던 딸은 이미 서울 동작구 사당동 한 건물 지하사무실에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이제 나리의 예쁜 모습은 저 세상에 가고 없고 전국민의 딸이 돼 버린 한 어린 천사에 대한 기억만이 우리 모두의 가슴에 밤하늘의 별처럼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부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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