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외환시장과 자금시장에 「A급 태풍」이 몰려 오고 있다. 태풍의 눈은 종합금융사. 기아사태 이후 신용도 하락으로 외화 차입의 길이 막혀버린 종금사가 국내에서 달러화는 물론 원화 조달에 혈안이 되면서 달러값과 금리가 동반 상승, 금융위기설을 부추기고 있다. 종금사의 「외화조달 24시」, 그것은 피를 말리는 전쟁이다. 지방 A종금사 외화자금팀 박모(36)과장은 출근하자마자 수화기부터 들었다. 이날 만기가 돼 돌아오는 달러화 단기 차입금이 무려 1억달러.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한다.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장기신용은행 등 그나마 외화사정이 좋은 국책은행과 특수은행에 하루짜리 「오버나이트 자금」을 요청했다. 『확답은 드릴 수 없고 일단 기다려 주세요』 답답했다. 저쪽도 요즘은 외화사정이 많이 쪼들리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다. 김모대리(30)에게 도쿄 홍콩 싱가포르 외환시장을 맡겼다.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금융기관 지점에 자투리라도 남는 달러가 있는지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박과장은 그 시간에 국내 외환시장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곳인데…. 그러나 할 수 없다.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13%대의 콜머니를 빌려 달러를 사자니 죽을 지경이다. 금리 상승과 환율 폭등의 화살이 자신을 겨냥하는 것 같아 움찔했다. 오후 3시경 서울의 B종금사에 「SOS」를 타전했다. B종금은 그나마 사정이 좋아 급한대로 5백만달러를 빌렸다. 이런 식으로 2천만달러를 긁어 모았지만 1억달러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저녁은 자장면으로 때웠다. 박과장은 이어 한국시간으로 오후 6시경 개장되는 런던 외환시장을 노크했다. 외환시장이지만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금융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마지막 보루는 오후 9시반경 열리는 뉴욕 외환시장. 아무리 외화사정이 나쁘더라도 런던에서 마무리짓는 게 보통이었는데 기아사태 이후 뉴욕에까지 손을 뻗치게 된 것이다. 「게는 가재편」이라고, 한국계 금융기관이 달러화를 빌려줘 밤 11시반이 돼서야 가까스로 1억달러를 막았다. 부도는 모면했다. 박과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넥타이를 풀었다. 요즘 매일 되풀이되는 외환전쟁에 진절머리가 났다. 내일은 또 어떻게 넘기나. 회사를 나서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겁다. 〈이강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