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백화점 「점령」한 日製, 국산 압도…『부끄러운 광복절』

입력 | 1997-08-14 20:25:00


『품질이야 믿을만하죠. 일본에서 만든 물건 아닙니까. 같은 동양권이라 우리 피부에도 잘 맞고요』 14일 서울 시내 한 백화점 1층 매장. 일제 「시세이도」화장품 코너에서 판매 여직원이 40대 여자손님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손님은 『그래요.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라며 립스틱과 영양크림 등 서너가지를 사갔다. 『일제라서 손님들이 꺼리지 않나요』(기자) 『일제는 안돼, 하는 손님이 요즘 어디 있어요』(판매직원) 다른 백화점의 가전품 매장. 이곳의 간판 상품은 국산이 아닌 일제 소니TV. 소니의 인기모델인 29인치와 34인치TV를 비롯해 5∼6개 모델이 매장 한 가운데 떡 버티고 있다. 국산품은 구석 차지. 『품질도 좋으면서 값도 국산과 비슷하니까 손님들이 소니 제품을 먼저 찾는다』고 매장 직원은 말했다. 이 매장에서는 올들어 국산 제품의 매출이 작년보다 크게 줄었다. 그러나 소니 제품 판매는 2배 가까이 늘었다. 이 백화점 생활용품 매장에 들어섰다가 순간적으로 착각을 했다. 일본 도쿄(東京)의 백화점에 왔나 하고. 욕실용품 주방용품 프라이팬 등 온통 일제 투성이. 가격은 국산의 2배 이상이지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불황이다, 불황이다 하지만 일제는 불황을 안타는 것 같아요』(판매직원) 쇼핑 나온 주부 黃延姬(황연희·33·서울 서대문구 대흥동)씨는 『집에서 쓰는 주방용품의 80%가 일제』라면서 『일제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고 오히려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일제 선호현상은 청소년들의 정신과 문화까지 지배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많이 입는 캐주얼 브랜드인 미끄마끄 나이스클랍 인터크루 인터메죠 등은 모두 일본에서 라이선스를 받은 제품. 이들 제품은 대개 할인이 없는 「노세일 브랜드」. 서울 교보문고 문구코너는 지브라 펜탈 등 일본 제품의 진열장이 국산 매장을 압도하고 있다. 『일제가 국산보다 2배 정도 비싸지만 디자인도 좋고 매끄럽게 쓰여 친구들이 쓰는 펜은 70% 이상이 일제예요. 역사적 갈등과 질좋은 일제를 쓰는 것은 별개 문제라고 생각해요』(한 여중생·15) 한글을 배우기도 전에 일본 만화영화 주인공인 「세일러 문」은 잘 알고 있는 어린이도 많다. 허모씨(34·회사원)는 『6세 된 딸아이가 세일러문 팬시세트를 사달라고 졸라 백화점에서 4만원을 주고 샀다』며 『딸아이 친구들중에 일본만화 캐릭터 제품을 갖고 있지 않은 아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일제 홍수 속에서 맞는 광복절이다. 〈이명재기자〉

트랜드뉴스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