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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일남씨,언론인 애환담은 「만년필과…」 출간

입력 | 1997-08-13 19:56:00


신문기자와 소설가. 최일남씨(65)는 두 직종에 발을 딛고 타인의 삶을 기웃거려왔다. 기자생활은 그에게 사람살이의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게 해주었다. 정 재계의 권세가부터 70년대 무교동 구두닦이까지 그의 인생 그물코에 엮였던 사람들 하나하나가 곧 「육화(肉化)된 역사」인 것이다. 「공식적인」 기사문장 안에 다 담을 수 없었던 그들의 체취를 그는 소설로 복원해냈다. 「마지막 납활자세대」라서 아직도 컴퓨터 자판이 낯설게만 여겨지는 그. 언론인으로 보낸 40년 세월의 인연을 되짚어 「만년필과 파피루스」(강출판사)라는 창작집을 엮었다. 잡지사 편집장으로 출발해 신문사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전전한 주인공 윤상호는 바로 작가 자신이다. 책에는 70년대 무교동 대폿집의 매캐한 연기가 어른거린다. 작가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동아일보 문화부장을 하던 시절이며 자고 깨면 긴급조치가 하나씩 추가되던 시대다. 그 시절 대폿집에서는 「나는 단순 월급쟁이가 아니다」라는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기자,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에도 「진정한 예술」에 목메어 우는 작가 화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 술로 울화를 달랬다. 「탄압이 없으면 상상으로나마 유사한 형국을 만들어야 활기를 띠는 세대」였을 그들의 기상을 작가는 『궁핍이 오히려 격정에 불을 댕기게 만드는 시대의 예쁜 광기』였다고 기억한다. 오랜 세월로 벼려진 장인(匠人)답게 스치듯 지난 한 문장에서도 기자의 삶은 무엇인가 가감없이 드러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찮은 것일수록, 아주 소소한 일일수록, 말의 진부를 가리는 열쇠구실을 한다」는 대목은 오랜 인터뷰어 경험에서 건져낸 사냥기술이다. 「정보의 처녀성에는 물불 가리지 않고 대들면서도 한번 물이 갔다고 믿는 먹이에는 제일 먼저 고개를 돌리는 것이 언론의 성미」라는 것 역시 솔직한 자기반성이다. 「최소한 글자를 갖고 노는 세계에서만은 꿀리지 않는다」고 확신했던 주인공. 그러나 이제는 신세대수습기자들에게서 『선생님 강의는 무의미해요』라고 「한물간 필객」 취급 당한다. 맥이 풀리지만 작가의 분신인 주인공 윤상호는 회한을 넘어서는 넉넉한 여유 위에 서 있다. 「한 시대의 미완성은 정작 완성품보다 훨씬 값진 교훈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정은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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