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삼동 다가구주택 「양추헌」(陽湫軒)은 강남의 다른 부지와 다를 것이 없는 평범한 주거지역에 위치해 있다. 대로변에서 골목길을 타고 이 곳으로 들어가노라면 여기저기 자동차의 위협 때문에 이리 피하고 저리 비켜야만 한다. 이 때문에 길 옆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옆으로 지나가는지조차 알기가 어렵다.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 어귀, 집들 사이로 조용히 감아도는 골목길, 그 좌우로 휘어지는 담장, 걸으며 사색을 하기도 하고 이웃을 만나 이야기도 나누는 그런 마을. 우리 생활속에 자리했던 이런 마을 풍경들은 점점 사라져버리고 삭막감만이 도시를 감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도시적 상황을 다소나마 해소하고 우리의 골목길을 집안에서 살려보자는 생각으로 양추헌을 설계했다. 이는 단순한 향수의 발로라기 보다는 메마른 정서와 인간성 상실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가구가 모여사는 다가구주택을 한지붕 속 마을로 만들기 위해 몇가지 건축적 장치를 동원했다. 먼저 층별 세대를 연결하는 계단이나 복도를 단순한 통로의 개념에서 벗어나 마을의 골목 역할을 하는 건축적 산책로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 입체적 골목길에서 이웃을 만나기도 하고 다른 층에 있는 이웃과 눈인사도 한다. 이 골목길은 전층에 시선이 닿을 수 있도록 계획됐으며 중심공간 역할을 담당하도록 돼 있다. 좁은 면적의 공간이지만 빛이 지하1층까지 들어오고 있다. 또 각 세대로 드나드는 길로서의 계단 등 모든 부분에도 빛이 들어 항상 밝도록 했다. 복도 중간에 알코브(구석진 공간)도 있고 원기둥도 나란히 세워져 바깥 세상과 시각적 교류도 갖게 하고 시각적 즐거움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반(半)지하층이라고 하면 바람도 들지 않고 프라이버시도 보장되지 않는 삶의 사각지대라 생각되지만 이곳에서는 지하부분 요소요소에 마당과 광정이 계획돼 개인권 보장은 물론 빛도 바람도 충분하다. 골목길이 있는 집, 지하마당이 있는 집. 그 속에서 인간을 되찾아 보게 되는 것이 양추헌의 특징이다. 방철린(인·토건축 대표) ▼ 약력 ▼ △한양대건축공학과 졸 △한양대건축학부 출강 △한국건축가협회 이사 △대한건축사협 편찬위원장 △한국건축가협회 작품상 수상 02―555―2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