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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세이]조경란/「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입력 | 1997-07-01 08:08:00


사진을 감상하는 것은 바로 침묵의 소리에 귀를 열어두는 것이다. 그 시간, 한장의 사진 속에 담긴 이미지들이 눈앞에 형상화되면서 작가의 의도나 철학까지도 읽어낼 수 있다.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기록 이상의 것을 넘어 있을 때 한장의 사진은 시간이나 시대를 넘어서도 생명력을 지속할 수 있다. 그런 사진이란 한편의 소설이나 시보다 더 많은 이야기와 울림을 품고 있게 마련이다. 최민식의 흑백 사진들은 보다 깊은 침묵의 몰입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그의 사진들 속에 인간의 고통을 직면하게끔 하는 끌림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통찰, 피할 수 없는 시련을 겪는 인간의 아픔에 초점을 맞추는 최민식의 작가정신은 단순한 카메라워크의 기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소재와 기교만으로 진실과 감동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삶을 관통하고 있는 의식이 담겨 있지 않다면 그것은 그저 죽은 종이 한장에 불과할 것이다. 「진정한 리얼리즘 사진가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눈을 감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정신이다. 노파의 얼굴에 새겨진 주름살, 자갈치시장의 생선 파는 여인들, 봇짐을 진 채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노인의 뒷모습, 콧물이 쑥 빠져나온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 늘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 혹은 오래전 할머니와 아버지의 모습들, 어쩌면 우리들의 유년 시절들. 그 모든 것을 감싸안고 있던 거리와 시대와 풍경들. 최민식은 그들과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소시민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과 함께 뒹군다. 그의 사진들은 그렇게 해서 태어난다. 그래서 작가는 「사진 때문에 더욱 불행해져야 했을지도」 모른다. 삶이 고단하고 더없이 부박하다고 느낄 때, 가끔은 이 작가의 흑백사진과 서정적인 짧은 글들을 펼쳐보곤 한다. 그의 납작한 사진 한장 한장들은 희망을 말하고 있다. 삶의 존엄성을 일깨워주는 독한 아픔이 숨어 있다. 그것도 단 한마디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말이다. 그 안에 거짓과 허위는 있을 수 없다. 그의 사진 앞에서 침묵하는 법을 배운다. 최민식 지음(한양출판 펴냄) 조경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