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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정범모/民草들의 나라걱정

입력 | 1997-05-13 20:33:00


『새 잎들이 산을 덮고. 이 계절이 참 좋지요. 정치만 잘하면 참 살기 좋은 나란데…』 지난 일요일 집 앞에서 잡아 탄 택시 운전사가 5월의 미풍 속을 달리다가 뒷자리에 앉은 내게 던진 말이다. 그도 나라 걱정을 하고 있었다. ▼ 「공든 탑」무너지나 ▼ 나라가 지금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나라 걱정이다.이대로가다가는그간 발전한다고 갖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룩한 「공든 탑」마저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그저께 전 현직 대학총장들의 모임에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호소문이 나왔다. 유난히 「난국」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총체적」인 어려움이라는 데 있다. 이런저런 사유와 사건으로 경제는 내리막길이고 정치는 실종됐으며 사회도의는 추락했고 대통령의 영도력마저 실추해 나라는 선장 없는 배처럼 됐다. 북한은 굶어가고, 언제 무너질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 게다가 「4강」(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들의 각종 정치적 경제적 공세도 거세고…. 어려움이 총체적인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것은 이 난국의 첫 책임이야 물론 정부와 여당에 있지만 국민의 눈은 야당이라고 이와 무관하다고는 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경제계 관계 언론계 그리고 교육계도 무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총장들의 모임도 「시국선언」보다는 「호소」를 택했고 대학의 「정도」에 대한 대학인으로서의 지성을 앞세웠다. 국민들이 대학을 보는 눈도 결코 곱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이 난국에 몇가지가 아쉽다. 우리에겐 우선 응당한 위기의식이 아쉽다. 여러 논자들이 자주 말하는 「지금 한국이 꼭 구한말과 같다」 또는 「지금 한국이 남미 나라들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는 우리의 개인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의식과 행동에 어떤 경각심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에겐 무엇보다 「진실의 순간」이 몹시 아쉽다. 모든 의혹의 당사자와 관련자는 명명백백히 진실을 밝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진실의 은폐는 사회불신을 낳고 불신은 사회존립의 기본 바탕을 흔들기 때문이다. 독재는 겉은 깨끗하고 속은 지저분하지만 민주는 겉은 지저분해도 속은 깨끗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진(前進)에는 후고(後顧)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실추된 국가 영도력의 추스름이 시급하다. 배에는 한시라도 선장이 없을 수 없다. 온갖 격랑과 해일이 이는 바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국가 영도력의 진공 상태에서 가상할 수 있는 어떤 「외우내환」이라도 만난다면 한국과 한반도가 어찌 될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국가 영도력을 어떻게 추스르고 어떻게 힘을 주느냐. 그 「해법」은 1차적으로 여야 정치권 양식의 책임이다. ▼ 정치권서 解法 내놔야 ▼ 우리에겐 제각기의 직분에서 위기 앞의 자성과 자숙과 자제가 아쉽다. 우리는 도산위기에서 봉급을 자진 반납했다는 어떤 회사 직원들처럼, 권익의 요구를 당분간 「유보」하고 연기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금년 봄 예상을 깬 대학생들의 데모 자제와 근로자 노동쟁의의 격감은 도리어 「민초」가 시국을 선도하는 「민풍」으로, 지도층 부유층이 이를 배워야만 할 것 같다. 모든 위기는 위기인 동시에 기회다. 더 어려운 위기는 더 큰 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지난날에 그랬듯이 앞날에도 위기를 헤치는 민족의 슬기와 저력이 있음을 믿는다. 그래서 5월의 훈풍속에 택시운전사가 아쉬워했던 「나라의 훈풍」이 얼른 찾아오기를 염원한다. 정범모(전한림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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