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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창/칠레]박흥서/부정부패 뭔지 몰라요

입력 | 1997-05-05 10:13:00


칠레는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다. 공무원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법이 우리보다 엄격한 것도 아니다. 특별히 부유하다거나 우수한 국민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진부한 얘기지만 건전한 시민의식이 이들의 일상생활을 받쳐주는 토대다. 철저한 준법정신이 부패로부터 사회를 보호해주는 방패다. 칠레인들만큼 책을 가까이 하는 국민도 드물다. 어느 도시를 가도 거리마다 골목마다 눈에 띄는 것이 서점이다. 얼마전 안데스산맥의 조그만 광산촌을 방문했을 때였다. 한적한 산골마을인데도 사방 1백m의 블록마다 2,3개씩 서점이 있고 사람들로 붐볐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둘씩이나 배출한 저력을 실감할 수밖에. 5백30만명 인구의 산티아고에는 대학이 몇 안된다. 그러니 10만여명의 학생을 수용하는 대학도 있다. 강의실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데 그중에는 단층의 독립가옥들도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강의내용만 충실하면 됐지 까짓 장소가 무에 그리 중요하냐는 식이다. 영수증 주고 받기는 칠레인들의 생활이다. 요금 3백여원인 시내버스도 영수증을 발행한다. 우리의 주민등록번호 처럼 개인마다 세번(稅番)이 부여되는데 상거래에서 세번을 대지 않으면 아예 물건을 살 수도 없다. 경제행위가 투명해 개개인의 소득과 지출이 명확하게 드러나니 부정한 돈이 생길 수 없다. 세금을 안낸 돈은 지출할 수도, 예금할 수도, 해외로 빼돌릴 수도 없다. 그야말로 휴지조각에 불과하다. 출처없는 돈은 당장 세무당국의 추적이 시작되고 세무공무원과의 결탁이라는 말은 아예 없다. 우리 눈에는 이들의 준법정신이 요령없고 답답해 보일 정도다. 법이 안된다고 하면 실제로도 안된다. 경비원이 지키는 회사의 출입금지구역은 사장도 들어가지 못한다. 들어갈 수 없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이런 가치관이야 말로 칠레 사회를 뒷받침하는 발전의 원동력이며 앞날을 밝게 해주는 요인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우울한 국내소식을 접하면서도 마치 남의 일처럼 들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할 때가 있다. 우리를 어렵게 하는 일들이 과연 내가 아닌 남 때문인지 자문해볼 일이 아닌가 한다. 박흥서(산티아고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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