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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영사부앞 조선족 동포의 「항변」

입력 | 1997-02-27 19:58:00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이제 지쳤습니다. 아무리 큰 사건이 발생했더라도 업무는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돈도 떨어져 더 기다릴 수도 없고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으니 답답할 뿐입니다』 『결혼식 날짜까지 잡아놓고 서류가 안돼 혼사가 막힐 지경입니다. 무언가 비상대책을 세워주어야 할텐데 자세히 설명도 해주지 않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27일 오전 9시. 黃長燁(황장엽)북한노동당비서가 머물고 있는 북경(北京)의 삼리둔(三里屯)외교단지내 한국영사부건물 입구. 20여명의 조선족 동포들이 초조한 표정으로 서성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남성과 국제결혼을 준비중인 조선족처녀와 한국행 비자를 신청한 취업희망자들. 이 날로 16일째 중단된 영사업무가 재개될 날을 기다리다 지친 모습이다. 같은날 오전 10시. 국제무역센터 3층에 위치한 한국대사관 사무실. 교육 문화 통일 관세 등 정부 각 부처에서 파견된 직원들이 하릴없이 이 사무실 저 사무실 전전하며 망명사태가 언제 끝날지를 화제로 한담을 나누는 모습이다. 원래 한국대사관은 이 건물의 3∼5층에 입주하고 있으나 중국측이 안전조치를 이유로 5층사무실 폐쇄를 요구, 일주일 전부터 일부 직원들이 방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됐다. 『전시중에도 영사업무는 웬만해서 중단하지 않습니다. 또 사정이 어려운 지역엔 순회영사도 파견해 일처리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루 2백여명이 영사부에 각종 서류를 접수해 왔는데 보름동안 중단됐으니 밀려있는 건이 얼마입니까. 영사업무가 재개된다 해도 큰 혼란이 일어날 겁니다』 『대사관지역은 우리 영토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아무리 안전문제가 있다고 해도 중국공안 요구에 이처럼 순순히 응한 건 너무 무기력한 자세입니다. 한개층에 불과 10여명의 병력이 지키고 있는데 5층 폐쇄를 요구한 것이나 이를 받아들인 것 모두 너무 안이한 것 아닌가요』 영사부 앞의 조선족들이 내뱉는 불만이나 대사관 직원들의 지적이 모두 「이유있는 항변」으로 들렸다. 언제까지나 『중국측이 곤란하다고 해서』를 되풀이할 것인가. 황의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