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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여자의 사랑(30)

입력 | 1997-01-31 20:09:00


독립군 김운하 〈1〉 서영이가 「청산리 독립군」을 처음 본 건 학교 앞 전철역 입구에서였다. 기말고사 기간인데 늦잠을 잤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 분명히 알람을 눌러 놓은 것 같은데 시계가 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은 집에 있는 시계를 탓할 때가 아니었다. 시험이면 미리 가 준비할 것도 많은데, 시간조차 늦어버린 것이었다. 전동차가 역에 도착하자마자 서영은 단숨에 계단을 뛰어올랐다. 누군가 그 모습을 봤다면 학생으로 가장한 어떤 여자 소매치기가 전동차 안에서 승객의 지갑을 턴 다음 누구에겐가 잡힐세라 쏜살같이 게이트를 빠져나와 입구 쪽으로 달아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녀가 계단을 뛰어오르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녀를 뒤쫓는 또 한 사람이 있지 않나 잠시 그녀가 뛰어온 계단 쪽을 바라봤다. 그러나 숨이 턱끝까지 차 오르도록 계단을 뛰어올라왔는데도 학교로 들어가는 입구 쪽 길엔 택시 한 대 서 있지 않았다. 시험 시간이 십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학교 진입로 쪽으로 들어오는 택시도 없었고, 들어왔다가 나가는 택시도 없었다. 전철역에 학교 이름이 들어가 있기는 했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교문까지의 거리는 일킬로미터가 넘었다. 그 시간까지 교문 앞에 도착한다 해도 거기서 강의실이 있는 인문 일호관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서영은 연신 시계를 보며, 발을 굴렀다. 그때 저쪽에서 「청산리 독립군」이 나타났다. 왜 그 복학생에게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모른다. 사람들은 그 복학생을 「청산리 독립군」이라고 불렀다. 서영이도 가끔 학교에서 그를 보았다. 그는 언제나 뒤에 폐닭을 철망에 담아 싣고 다니면 딱 좋을 오십시시짜리의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머리에 쓰고 있는 파이버 역시 칠이 벗겨질대로 벗겨져 붉은색과 흰색으로 얼룩얼룩했다. 청산리 독립군이라는 별명도 오래된 오토바이 때문에 생긴 것인지, 아니면 늘 혼자만 그렇게 다녀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그의 모습과 잘 어울려 보였다. 『이봐요, 독립군!』 서영은 독립군이 학교 진입로 쪽으로 커브를 돌아 자기 앞을 지나자 손을 내밀며 큰소리로 그를 불렀다. 「독립군」이라는 것말고는 이름도 모르는 학생이었다. 독립군은 그녀 앞을 지나 저만치 가다가 오토바이를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날 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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