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사찰에 들어선 순간 조급함 사라지고 부처님이 부리는 마법이 시작됩니다”

“사찰에 들어선 순간 조급함 사라지고 부처님이 부리는 마법이 시작됩니다”

Posted August. 02, 2021 08:36,   

Updated August. 02, 2021 08:36

日本語

 옛날 옛적 동해 용왕의 아들이 신승(神僧)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줄 것을 부탁했다. 신승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바로 그곳이라고 말해주었다. 용왕의 아들이 길을 떠나자 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다. 한 사찰에서 멈춘 용왕의 아들은 큰 미륵돌로 변했고, 그를 따르던 수많은 고기들도 크고 작은 돌로 변했다. 경남 밀양 만어사(萬魚寺)에 얽힌 전설이다.

 최근 ‘처마 끝 풍경이 내게 물었다’(담앤북스)를 출간한 배종훈 작가(46·사진)는 그의 사찰 스케치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으로 만어사를 꼽았다. 그는 ‘당신을 기다릴 수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제목의 작품과 함께 “부처님이 오시는 날, 그날이 오면 오랜 잠에서 깨어난 듯 용왕의 아들도, 물고기도, 우리도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고 썼다.

 이 책에는 경기 파주 보광사, 충남 서산 개심사와 부석사, 전남 화순 운주사와 만연사, 강원 양양 낙산사, 경북 영덕 장육사 등 사찰 29곳의 풍경과 기록들이 실려 있다.

 중학교 국어 교사이기도 한 배 작가는 틈틈이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기록해온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만화가, 여행 작가, ‘템플 스케처(temple sketcher)’로 활동하고 있다. 템플 스케처는 사찰과 관련한 드로잉 콘텐츠와 에세이를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그는 2019년 초부터 그림 도구와 카메라를 챙겨 매달 한 번씩 사찰의 숨겨진 아름다움을 찾아 떠났다. “책에 언급된 사찰들은 서너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어 익숙한 곳들이다. 사찰들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그곳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람이 거의 없는 사찰의 내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예상하지 못한 선물이었다.”

 한때 미술과 교직을 두고 진로를 고민했던 그는 따로 그림 공부를 하지 않았다. 2004년 교사가 되기 전에 근무했던 직장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만화로 옮긴 ‘넥타이 휘날리며’가 첫 책이다. “그림이든 글이든 꾸준히 하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림은 반복할수록 좋아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작품을 올려 독자들과 소통하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앞으로 6년에 걸쳐 사찰 100곳에 대한 작업을 하는 게 그의 목표다. 그는 사찰 여행의 즐거움을 이렇게 말한다.

 “조급한 마음은 일주문을 통과하는 순간 사라지고 없습니다. 걸음은 자연스럽게 느려지고 평소 살펴보지 않던 나무와 바위, 흙, 그리고 작은 벌레까지 눈에 들어옵니다. … 어쩌면 부처님이 부리는 마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갑식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