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38층짜리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중간층에 불이 나 삽시간에 옥상까지 번지면서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불길이 건물 내부가 아닌 가연성 마감재로 이뤄진 외벽을 타고 옥상 쪽으로 번지면서 4명이 다치는 가벼운 인명 피해를 입었지만 대피 과정에서 큰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고가사다리 등 화재장비가 맥을 못 추면서 초고층건물이 소방 사각지대임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10분 안 돼 옥상까지 번져
1일 오전 11시 33분경 해운대구 우1동 쌍둥이 주상복합아파트인 우신골든스위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입주민 심모 씨(36여) 등 4명이 연기에 질식되거나 정신적 충격으로 인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불길을 피해 옥상 등에 있던 입주민 38명은 무사히 구조됐다. 큰 불은 2시간 반 만에 꺼졌지만 잔불이 남아 오후 5시가 넘어서도 화재 진압 작업이 계속됐다.
불은 아파트 4층 재활용품 선별장이나 세탁실 쪽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목격자 홍모 씨는 4층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이 두 개 동 사이 외벽으로 퍼져 나갔다고 말했다. 불은 순식간에 중앙계단 환풍 통로와 두 개 동 건물 사이 외벽을 타고 37층 스카이라운지와 펜트하우스, 입주 가구 몇 채를 태웠다. 건물 외벽은 30%가량이 타거나 그을렸다. 이 아파트는 건물 외관을 살리기 위해 외벽 마감재인 알루미늄 패널 바깥 부분에 특수 황금색 페인트를 칠했다. 소방당국은 이 마감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은 두 개 동 사이로 V자 모양으로 타올랐고, 황금색 알루미늄 패널 등 건축 자재가 구경하던 시민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등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선별장 등에서 평소 폐지를 태우기도 했다는 일부 입주민 진술을 토대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 중이다. 소방당국은 또 최초 발화지점인 4층에 스프링클러 시설이 설치돼 있지 않은 점을 확인하고 건물 관리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일 계획이다.
큰불 피해 예상보다 적어 안도
이날 화재는 규모에 비해 다행히 인명 피해는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 37층짜리 건물 외벽 30%가량이 타거나 그을리고 꼭대기 층인 펜트하우스, 스카이라운지 등이 모두 타는 등 물적 피해는 많이 발생했지만 인명 피해는 입주민 4명이 경상을 입은 정도다.
화재 현장이 인근 해운대소방서에서 차로 12분 거리여서 소방관들의 출동이 빨랐다. 화재 신고 3분 만에 소방관들이 건물로 들어갔다. 곧바로 발화지점을 비롯해 각 층에 올라가 입주민에게 대피를 종용했다. 그러나 일부 주민들은 소방당국의 초기 진화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입주민들은 고층으로 번지기 전에 소방관들이 도착해 5, 6층 유리를 깨고 빨리 불을 끄라고 얘기했지만 동의가 필요하다고 미적거렸고 그사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고 주장했다.
불이 낮 시간대에 발생한 것도 피해가 적은 원인 중 하나다. 이 아파트 입주민은 400여 명으로 대부분 오전 일찍 집을 나가 집에는 전업 주부나 노인 등만 남아 있었다. 이들은 인근에서 울려오는 119구조대 사이렌 소리를 듣고 건물에 불이 난 사실을 알고 대피했다.
4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환풍 통로를 타고 가연성 재질로 돼 있는 황금색 외벽으로 급속히 붙으면서 내부보다 외부에 더 큰 피해를 줬다. 만약 불길이 내부로 몰렸다면 참사가 일어났을 법한 상황이다. 소방 관계자는 비상계단이 유일한 대피로인 데다 화재 진압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하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윤희각 김지현 toto@donga.com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