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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루탄

Posted June. 06, 2003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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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말까지 시위에 직접 참여했거나 그 근처를 지나던 사람들은 대부분 경찰이 쏜 최루탄에 눈물을 쏟아내고 코나 목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경험했다. 화학물질로 눈물샘과 호흡기 점막을 자극해 기침 호흡곤란 등을 일으키게 하는 최루가스가 개발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다. 이후 이 무기는 성능이 개선돼 시위나 폭동 진압 때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최루탄으로 진화했다. 우리나라에서는 60년 315부정선거 규탄시위 때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돼 학생 시민들의 시위를 한층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권위주의 시절 최루탄은 정권을 지탱해주는 일종의 버팀목이었다. 집회 시위 현장에는 거의 예외 없이 최루탄이 등장했고 거리에 남은 하얀 가루의 잔재는 며칠씩 행인을 고통스럽게 했다. 오죽하면 당시 한국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이 한국에 오면 최루가스 냄새부터 난다고 했을까. 얼마나 많은 최루탄을 생산했던지 80년대 중반 어느 해에는 어떤 최루탄 생산업체 사장의 개인사업자 소득세 납부액이 전국 최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최루탄 사용과 관련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사자성어가 있다. 무탄무석() 무석무탄이 그것이다. 시위 참가자들은 경찰이 먼저 최루탄을 쏘지 않으면 자신들도 돌이나 화염병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당국은 학생들이 먼저 이를 던지지 않으면 최루탄 사용을 자제하겠다는 것이었다. 시위 초반에는 그런대로 약속이 지켜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으레 유탄유석 유석유탄이 되고 말았던 게 당시의 풍경이다.

경찰의 최루탄 사용이 자취를 감춘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98년 9월. 경찰은 앞으로 최루탄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한 뒤 집회 시위 현장에 여자경찰관을 배치해 이른바 립스틱 라인을 만드는 등 유연한 시위문화 정착을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다. 그때부터 경찰이 보관해 온 60만발의 최루탄 상당수가 내부장약이나 약품이 굳어버려 불발탄이 돼 버렸다고 한다. 최루탄 제조업체들도 거의 도산했다. 그러나 과격 불법시위가 늘어나고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경찰이 최루탄 사용을 재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그동안 아슬아슬하게 지켜온 무 최루탄 5년의 기록이 깨질지도 모르겠다. 여론은 나뉜다. 한쪽은 다시 권위주의 정권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냐고 반발하고 있고, 또 한쪽은 공권력 확립을 위해 필요하다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신은 어느 쪽이십니까.

송 영 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