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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아이콘’ 된 아무로…한일 문화교류로 ‘한류 열풍’

‘시대의 아이콘’ 된 아무로…한일 문화교류로 ‘한류 열풍’

Posted March. 09, 2019 08:23,   

Updated March. 09, 2019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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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3년간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수놓았던 문화 아이콘들이 잇달아 무대를 떠났다. 이들의 음반 판매량을 모두 합치면 무려 9600만 장. 일본인은 입을 모아 “진정으로 한 시대가 저무는 것 같아 슬프다”고 한다.

○ 일본 문화 개방과 한류

 헤이세이 시대의 문화적 사건으로 활발한 한일 문화 교류를 빼놓을 수 없다. 1998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일본 총리는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 선언’에서 문화 교류 확대를 공언했다. 두 달 뒤 한국 정부는 일본 문화에 대한 단계적 개방을 발표하며 음지에 있던 일본 영화·만화·음악 등을 양지로 끌어올렸다.

 1999년 개봉한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는 당시 140만 관객을 동원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자 주인공의 대사 ‘오겐키데스카(잘 지냅니까)’가 회자될 정도로 큰 인기였다. 박효신 등 유명 가수들도 일본 노래를 잇달아 리메이크했다. 곤도 세이이치(近藤誠一) 전 문화청 장관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문화 교류는 양국 관계의 기본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2000년대에는 한국 문화 콘텐츠의 일본 수출이 본격화됐다. 가수 보아의 데뷔 앨범은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고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 내 신드롬을 일으켰다. 배용준·동방신기가 주도한 1차 한류, 카라·소녀시대 등 걸그룹이 이끈 2차 한류까지 잇따라 성공하자 일본에서는 케이팝과 드라마를 앞세운 한류가 당당한 문화 장르로 평가받았다. 한류 연구가 이형진 와세다대 조교수(국제교양학부)는 “한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이고 서구 문화 콘텐츠에서 느낄 수 없는 친근함과 동질감이 인기 요소”라고 분석했다.

 2012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가라앉았던 한류는 2017년 걸그룹 트와이스와 아이돌 방탄소년단이 이끄는 3차 한류 이후 다시 주목받고 있다. 콘텐츠 소비뿐 아니라 한국 스타일로 화장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일상 영역으로 한류가 확대됐다. 이 교수는 “10여 년 전 엄마 무릎에 앉아 한류 드라마를 보던 10, 20대들이 현재 한류의 주 소비층”이라고 진단했다.

○ 당당한 여성 vs 유약한 남성

 일본의 전형적 남성상과 여성상도 바뀌었다. 1990년대 중반 긴 통굽 부츠를 신고 긴 생머리를 날리며 춤추던 아무로 나미에. 2000년대 중반 섹시한 이미지를 앞세운 고다 구미(倖田來未). 당당하고 강한 이미지의 여가수들은 일본 여성의 ‘워너비’였다.

 아무로의 패션과 화장법을 따라 하는 ‘아무러(Amurer)’, 만화 속 캐릭터 같은 짙은 화장을 한 ‘가루(girl의 일본 발음)’는 암묵적으로 순종과 귀여움을 강요받았던 일본 여성에게 일종의 반란 기폭제였다. 저출산·고령화, 독신여성 증가 등 사회 변화 속에서 남편과 아이를 뒷바라지하는 대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려는 여성들이 대거 등장했다. 아무로가 은퇴를 발표했을 때 ‘아무로스’(Amuro+Loss·아무로가 사라진다는 뜻)란 신조어가 등장했을 정도다. 그만큼 여성들의 ‘아무로 사랑’은 뜨거웠다.

 남성은 소심해지고 약해졌다. 연애보다 취미가 좋다는 남성들이 도쿄 유명 전자상가 아키하바라를 중심으로 만든 ‘오타쿠 문화’, 방 안에 틀어박혀 자신만의 세계에 빠진 ‘히키코모리’는 헤이세이 시대의 남성상을 상징한다. 하지만 이들 중 극소수는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흉악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1995년 도쿄 지하철역 사린가스 테러를 자행한 옴진리교 신도 중 일부가 ‘과학 오타쿠’로 알려지면서 온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도쿄=김범석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