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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웅산 테러의 추억

Posted July. 26, 2011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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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수목 드라마 시티헌터는 1983년 미얀마(당시 버마)에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한국 각료 등 21명이 희생된 아웅산 폭탄테러 사건을 배경에 깔고 있다. 당시 정부 요직의 핵심 5인방은 보복을 위해 비밀리에 북파공작원 출신 21명을 북에 보내 북한 장성 21명을 제거한다. 대원들은 귀환을 위해 약속장소로 가지만 자신들을 태워가기로 했던 잠수함에서 날아든 기관총탄에 20명이 목숨을 잃는다. 핵심 5인방이 보복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대원들을 희생시킨 것이다. 유일한 생존자가 훗날 5인방을 상대로 조국의 배신에 대한 복수극을 벌인다는 것이 드라마의 줄거리다.

실제 아웅산 테러를 감행한 북한 공작원 강민철은 탈출을 위해 약속장소로 갔으나 자신을 데려갈 보트는 보이지 않았다. 미얀마 군경에 포위되자 강민철은 수류탄 안전핀을 뽑아 저항하다 체포됐다. 안전핀은 뽑았으나 안전버튼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수류탄이 저절로 터지는 것을 보고 강민철은 조국이 날 죽이려고 이런 수류탄을 지급한 거구나하고 배신감을 느껴 자신이 북한 공작원임을 자백했다. 라종일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공개한 내용이다.

인간을 테러를 위한 도구로 쓰고 과감히 버리는 북한 체제의 비인간성을 엿볼 수 있다. 북한의 의도대로 강민철이 죽었더라면 아웅산 테러가 북한의 소행임을 증명하기가 어려운 사태가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강민철은 25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다 2008년 중증 간 질환으로 사망했다. 강민철을 한국으로 데려와 북한 테러조직의 잔악성과 비인간성을 증언하게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범 김현희는 체포 직후 한국으로 압송돼 재판과 사면을 거쳐 북한 테러의 증인이 됐다.

라 전 차장은 1998년부터 강민철을 한국으로 송환하기 위해 백방으로 애썼으나 당시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꺼려 성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햇볕정책을 이어가가자면 북한 김정일의 심기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북한과 대화하고 화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범죄상을 낱낱이 기록하고 증거를 확보해놓는 것은 독일의 사례를 보더라도 매우 중요하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