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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에겐 피땀 흘려 지켜준 나라 손자손녀에겐 무료 유학 되갚는 나라

할아버지에겐 피땀 흘려 지켜준 나라 손자손녀에겐 무료 유학 되갚는 나라

Posted June. 24, 201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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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9월 네덜란드인 니콜라스 스쿠트마클 씨(83)는 한 달이 넘는 항해 끝에 난생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네덜란드 군인 5320명 중 한 명. 그해 겨울 경기 연천군 티본고지 전투에서 중공군과 싸우다 엉덩이에 입은 파편 상처는 그만의 훈장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2011년 4월, 이번에는 그의 외손자 피터르 마킬스 씨(27)가 한국을 찾았다. 한국을 돕기 위해 왔던 할아버지와 반대로 마킬스 씨는 한국 정부의 도움으로 한국외국어대에서 공부를 한다.

이는 국가보훈처가 625전쟁 61주년을 맞아 한국외대와 함께 해외 참전용사 후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데 따른 것. 현지에 장학금을 보내던 기존 사업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다. 마킬스 씨를 비롯해 미국과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태국 터키 등에서 온 1기 참전용사 후손 19명은 내년 4월까지 한국외대에서 한국어 연수를 거친 뒤 이듬해부터 희망하는 학위 과정을 각각 밟게 된다. 등록금과 기숙사비 전액은 학교에서 지원하고 에티오피아와 콜롬비아 태국 등 저소득국가 출신 학생들은 한국전쟁기념재단에서 한 달에 최대 50만 원의 생활비도 받는다.

22일 저녁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한국외대 캠퍼스에서 만난 마킬스 씨와 라우라 헨드릭스 씨(20여네덜란드), 후안 아르구엘로 씨(33콜롬비아) 멜레사 벨레이나 씨(29에티오피아)는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60년 전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의 도움을 잊지 않고 우리에게까지 보은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사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이들에게 한국이란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기억하던 피의 전쟁터가 아닌 다이내믹하고 따뜻한 나라였다.

아르구엘로 씨는 할아버지는 최근까지도 2, 3년에 한 번씩 한국을 찾을 정도로 한국에 애착이 크다며 한국이 올 때마다 더 발전해 있어 놀랍다던 할아버지의 말을 이제 나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서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일하던 벨레이나 씨는 한국 유학 제안을 받자마자 어렵사리 구한 직장도 포기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거실 벽에 걸려 있던 아버지의 참전 훈장을 보고 자랐다며 한국 유학 계획을 처음 말했을 때 아버지는 나는 한국에서 두 번째 목숨을 얻었으니 절반은 한국인이라며 격려해줬다고 했다.

헨드릭스 씨 역시 참전용사인 할아버지 게랄두스 헨드릭스 씨(79)의 적극적인 지지 아래 한국행을 택했다. 오랫동안 전쟁 후유증에 시달렸던 그의 할아버지는 평생 한 번도 가족들에게 한국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그랬던 그가 한국에 대한 기억을 점차 되살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한국을 다녀간 이후부터. 헨드릭스 씨는 한국에 다녀온 할아버지가 한국인들이 자신에게 아직도 감사해한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워했다며 요즘도 한국 유치원생들이 자신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눈물을 짓곤 한다고 말했다.

이제 갓 자신들의 이름을 한글로 쓸 수 있게 됐다는 이들은 앞으로 길게는 5년 정도 한국에 머물며 공부할 예정이다. 이후로는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 한국과의 인연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찾고 싶다고 했다. 아르구엘로 씨는 사회학과 인권 분야의 석사 학위를 딴 뒤 내전으로 고통받는 고국으로 돌아가 도움이 되고 싶다고 했다. 벨레이나 씨는 교육 상황이 열악한 에티오피아에서 석사 학위를 받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추운 한국 겨울 날씨가 살짝 두렵긴 하지만 일생일대의 기회가 주어진 만큼 최선을 다하고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한국외대 측은 국가 이미지 개선 효과 등이 있는 만큼 앞으로도 매년 20여 명의 지원자를 선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순천향대도 한국전쟁기념재단과 함께 2학기부터 해외 참전용사 후손들에게 어학 코스부터 대학원 과정까지 학비와 기숙사비 전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강원 화천군 역시 화천전투에 참전했던 에티오피아 용사 후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장학금과 체류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김지현 박재명 jhk85@donga.com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