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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장 난 디지털 청와대

Posted March. 18, 200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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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이 바뀌면 가장 먼저 인수 인계하는 것이 핵가방이다. 핵가방은 유사시 대통령이 즉시 핵무기 발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장치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때인 1960년대 초 쿠바 미사일 위기 직후 처음 등장했다. 구소련도 이에 대응해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 때인 1983년 핵가방을 도입했다. 핵가방은 그림자처럼 군 통수권자를 따라 다닌다. 우리는 2월 25일 0시 군통수용 지휘전화 박스를 이양하는 것으로 첫 정권 인수인계를 시작한다.

그러나 핵가방이나 군통수용 지휘전화박스 이양은 정권 교체의 상징적 조치에 지나지 않는다. 실질적인 정권 인수인계는 총체적인 대통령 업무를 주고받는 것으로 새 대통령이 집무실에 첫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한 2월 25일 저녁부터 내부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작동하는데 열흘이나 걸렸고 그 후에도 한동안 정상 작동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15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직접 밝힌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 디지털 청와대를 만들겠다면서 이지원(e)이란 인터넷 통합관리 업무시스템을 개발했다. 자신을 포함해 시스템 구축에 참여한 5명 공동 명의로 2006년 2월 특허까지 받았다. 이지원은 디지털 지식정원의 약자로, 문서 생성부터 결재 후 기록까지 모든 단계의 업무 처리과정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노 전 대통령 측은 이를 통해 모든 청와대 업무를 인계하겠다고 했으나, 정상적인 업무 인수인계는커녕 컴퓨터 작동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정보통신 강국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국정의 심장부인 청와대에서 어떻게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가. 정권 인수인계 과정의 단순한 실수나 허점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도 중차대한 사태이다. 도대체 대통령직인수위는 영어교육으로 시끄럽게 한 것 말고는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어느 쪽의 잘못인지는 모르지만 두 번 다시 이런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 차제에 원활하고 빈틈없는 정권 인수인계를 위한 치밀한 청사진을 마련할 일이다.

이 진 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