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배고픈 자유에서 배부른 개방으로 제2변혁 나섰다

배고픈 자유에서 배부른 개방으로 제2변혁 나섰다

Posted January. 14, 2008 07:21,   

日本語

지금도 조선소 앞을 지날 때면 그날의 기억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폴란드 그단스크 시 두가 광장의 주점에서 일시 귀국 기념으로 옛 동료들과 맥주잔을 기울이던 안제이 밀레프스키(55) 씨. 1988년 8월 레흐 바웬사와 함께 그단스크 레닌 조선소에서 자유노조 인정과 경제개혁을 요구하며 민주화 운동을 벌였던 일이 그에겐 여전히 생생한 감격으로 남아 있다. 밀레프스키 씨는 동료 대부분이 노조운동에 참여해 세상을 바꿨다는 기억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며 폴란드 변화 주역으로서의 자부심을 나타냈다. 오늘날 그는 스웨덴의 선박회사에서 페인트공으로 일하며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자유는 얻었지만

동서 진영 간 대결이 한창이던 1980년, 전기공 출신인 레흐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가 공산권 최초로 결성됐다. 차근차근 세를 모아 나간 자유노조는 1988년 대대적인 파업과 민주화 운동에 나섰고 1989년 자유선거에서 승리해 체제 전환을 이끌었다. 공산권 붕괴의 신호탄이었다.

그러나 체제 변화가 장밋빛 미래만을 보장한 것은 아니었다. 자본주의로 변신하는 과정에 겪어야 하는 경쟁은 너무도 치열했고 좌파 정권의 등장은 정체성 혼란을 가져왔다.

밀레프스키 씨는 지금 삶의 질이 향상된 것을 보면 벅찬 감정을 느끼지만 파업 당시의 희망대로 된 것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빈부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쉽게 치유하기 어려웠다. 체제 변화와 경쟁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공산주의 시절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체제 변화 이후 20년이 되도록 좌우파 정권교체로 세월을 낭비한 폴란드는 수도인 바르샤바만 벗어나면 대부분 도로가 왕복 2차로일 정도로 인프라가 열악하다. 밀레프스키 씨 역시 고단한 노동자의 삶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폴란드의 유럽연합(EU) 가입(2004년 5월)은 실업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폴란드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길이었다. 제2의 체제 변화로 불리는 EU 가입은 250만 폴란드 노동자들이 더 많은 임금을 찾아 영국으로, 아일랜드로 쏟아져 나가는 탈출구를 마련했다. 연말을 맞아 잠시 귀국한 밀레프스키 씨도 이런 대열의 참가자였다.

공산주의 청산은 미완성

바르샤바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37층 높이의 문화과학궁전은 옛 소련이 지어준 스탈린의 선물이다. 폴란드인들은 흔히 바르샤바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문화과학궁전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농담을 한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이 건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란다.

과거사 평가에서도 이 같은 반소() 기류를 쉽게 읽을 수 있다. 폴란드는 독립을 쟁취한 1918년 시작된 정권을 제1공화국으로 부르지만 공산정권(19471989년)은 공화국 국제() 분류에서 아예 제외해 버렸다.

그러나 과거사 청산은 이와 별개다. 부동산 재벌을 비롯한 부유층 대부분은 과거 공산독재 시절의 권력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공산세력이 권력에서 쫓겨나기 직전 토지 소유권을 챙긴 뒤 외국 기업에 팔아넘긴 결과였다.

두가 광장에서 인형을 파는 이레네우슈 유레크(50) 씨는 내 삶은 그대로인데 옛날 엘리트 집단은 여전히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일반 시민, 체제 변화 경험 부족

폴란드의 체제 변화는 시스템 측면에선 완성됐지만 사회 심리적으로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야누시 시르메르 폴란드 경제연구소(CASE) 연구위원은 일반인들은 새로운 자본주의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구조적 변화보다는 단지 생활 여건이 나아졌는지에만 주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변화의 원동력이 필요한 시점에 찾아온 것이 바로 EU 가입이었다.

EU 가입 초기에 폴란드는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보수우파인 법과 정의당(Pis)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은 2005년 대선에 승리한 뒤 가톨릭 원리주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EU 통합 속도를 늦추며 시장 보호에 나섰다.

폴란드는 지난해 10월 총선을 계기로 비로소 변화를 향한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폴란드 국민들은 중도우파인 시민강령의 손을 들어주었다. 도날트 투스크 당수는 총리에 오른 뒤 EU 통합 중시, 친기업 및 외국 투자 유치 장려 정책을 저돌적으로 추진하며 경제정책의 주도권을 잡았다.

지난해 6.1%에 이어 올해도 6.5% 성장이 예상되는 빠른 경제성장도 그의 친기업적인 개방정책의 결과로 평가된다.

오세광 KOTRA 바르샤바 무역관장은 20072013년 EU 기금 673억 유로(약 91조 원)가 지원되면 놀라운 속도의 발전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단스크에서 만난 안제이 시츠만(49) 씨는 EU 가입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도입 당시처럼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지만 폴란드의 미래에 밝은 빛을 던져 줄 것이라고 낙관했다.



김영식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