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오피니언] 가슴 저미는 고통

Posted March. 31, 2006 03:01,   

日本語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좋은 집안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몇 세대에 걸쳐, 남보다 훨씬 큰 희생과 솔선수범으로 국가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해야 명문()이나 명가()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병무청의 병역이행명문가 명예의 전당에 오른 집안들이 그런 경우다. 이곳엔 할아버지 아들 손자 등 3대가 모두 국방의 의무를 마친 124개 가문이 소개돼 있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 진정한 명가들이다.

열린우리당 경기지사 후보로 531 지방선거에 출마할 예정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이 그제 한 라디오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부모들이 군대를 보내는 애를 앞에 두고 (느끼는)가슴을 저미는 고통을 저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군 입대를 앞둔 28세 아들에 대한 얘기였다. 이중국적자였던 아들은 1998년 미국 국적을 선택해 병역을 면제받았으나 최근 한국국적을 회복했다. 진 씨는 아들의 결정에 대해 아버지가 공직생활을 계속 하는 것에 대한 배려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역기피 의혹을 받았던 자식을 뒤늦게 입대시키면서 가슴 저미는 고통을 느낀다니, 보내기 싫은 것을 보낸다는 뜻이 아닌가. 이 말을 듣는 보통 국민의 심정이 어떨까.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자가 군에 가는 것은 당연하다고 믿는다. 요즘엔 자원 입대자도 늘고 있다. 병영생활도 크게 개선됐다. 그런데도 전직 장관에, 전국 인구의 4분의 1을 품고 있는 경기도의 지사가 되겠다는 인물이 아들을 못 보낼 곳에 보내는 것처럼 말한다면 어떤 국민이 자식을 군에 보내려 하겠는가.

경기도 북부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접경지역으로 유사시 남북의 주력군이 충돌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진 씨가 선거를 앞두고 경기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해 아들을 군에 보내는 것이라면 경기도민을 기만하는 행위다. 가슴 저미는 고통을 겪지 않고 싶다면 병역의무가 없는 외국에서 살면 된다. 그게 아니라면 묵묵히 병역의무를 다하는 보통 국민들을 힘 빠지고 화나게 해선 안 된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