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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적의 배

Posted October. 11, 2004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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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들이 바다에 나가면서 배우는 격언 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할 경우 도와 주라는 것입니다. 배의 안전은 바로 이 원칙에 달려 있습니다. 이 원칙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1960년 8월 미국 워싱턴의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마리너스 수사()가 한 연설의 첫 대목이다. 1950년 12월 바람 찬 흥남부두에서 있었던 일을 기념해 미 정부가 표창을 수여하는 자리였다.

흥남철수작전 때 미국 국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7607t)는 북한 피란민 1만4000명을 거제도로 대피시켰다. 35명의 승무원 외에 겨우 12명을 더 태울 수 있는 화물선에 그 많은 사람을 태우고, 더욱이 3일 항해 중 단 한 건의 인명피해도 없었다는 것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다. 훗날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해상 구조 작전이라고 찬양한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작년에 한국에서도 출간된 기적의 배(빌 길버트 지음, 안재철 옮김)에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625전쟁 후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영웅담은 한미 두 나라 사람들 뇌리에서 점차 지워졌다. 1958년과 1960년 두 나라 정부의 표창을 받았지만 그때뿐이었다.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피란민 대피작전을 지휘했던 레너드 라루 선장은 1954년 가톨릭에 귀의해 2001년 타계할 때까지 마리너스 수사로서 여생을 보냈다. 당시 이 배를 타고 자유를 얻은 피란민 중 상당수도 이젠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배로 올해 기네스북에 올랐다는 소식이 반갑다.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리는 625전쟁의 인상적인 장면 하나가 들춰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같이 한국사회의 가치관이 혼란스러운 때 기적의 배를 재조명함으로써 앞 세대가 겪었던 고난을 더듬어 보고 한미간 혈맹()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은 미래를 설계하는 데에도 참고가 될 것이다. 마침 마리너스 수사가 지냈던 미 뉴저지주의 뉴턴 수도원에 추모공원과 추모비 건립이 추진 중이라니 더 좋은 일 아닌가.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