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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부산 시네마 천국

Posted October. 09, 2004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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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국제영화제는 문화가 한 도시의 위상과 이미지를 얼마나 바꿔 놓을 수 있는가를 극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1996년 문화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항도() 부산에서 이 영화제가 시작될 무렵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성공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출범 몇 년 만에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 잡았고, 이제 세계 5대 영화제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국내 2위의 도시지만 문화적으로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었던 부산은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시네 시티(Cine City)로 자리매김했다.

7일 밤 부산 수영만 야외무대에서 열린 개막식에는 임권택 이창동 강제규 김기덕 감독, 안성기 강수연 장미희 이영애 이은주 양동근 등의 배우가 참석했다. 유명 감독과 배우들이 붉은색 카펫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팬들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고, 해운대 백사장과 남포동 일대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영화 얘기로 밤을 지새웠다. 최근 한국영화가 외국의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잇따라 수상자(작)를 내게 된 것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한 외교적 성과와 국제 영화 인맥 확보가 밑거름이 됐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김동호 집행위원장의 리더십과 박광수 이용관 김지석 전양준 등 영화인들의 헌신, 행정기관의 불간섭과 철두철미한 사후평가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와 영화인들이 이 축제의 진정한 주인이 되도록 했다는 점이다. 정치인과 지자체장이 주빈이 되고, 그들의 알맹이 없는 축사가 줄을 잇는 다른 지역 축제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올 개막식과 개막 리셉션에도 정치인들은 주빈이 될 수 없었다. 여당 당의장과 문화관광부 장관, 국회 문화관광위원장과 소속 위원, 지역 정치인 등이 다수 참석했지만 어느 누구도 단상에 오르지 못했다. 오래전 유력한 대선 주자 두 사람이 하루 차이로 부산에 와 단상에서 인사만 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단호히 뿌리친 이래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전통을 확립한 것이다. 문화에 있어 중요한 것은 돈과 시설보다는 사람과 열정, 그리고 지역 주민의 애정과 협조라는 것을 부산국제영화제는 확인해 주고 있다.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