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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패러디 공화국

Posted July. 15, 200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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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성적()으로 비하한 패러디 사건이 화제다. 야당은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등 여권에 연일 맹공을 퍼붓고 있고, 정부 여당은 뒷수습에 급급한 모습이다. 불륜을 소재로 한 영화 포스터를 원작 삼아 여성 야당지도자를 희화화한 사진을, 그것도 국가의 얼굴격인 청와대 홈페이지에 올려놓았으니 사안이 결코 가볍지 않다. 피해자인 박 전 대표는 말할 것도 없고 양식 있는 국민이라면 눈살을 찌푸릴 만하다.

패러디는 어느새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표현양식이 됐다. 인터넷에서 아무 검색 사이트에나 들어가 패러디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관련 사이트가 수백개씩 줄줄이 뜬다. 패러디가 소재로 삼는 분야도 탄핵 총선 정당 등 정치에서 영화 드라마 연예인 등 문화, 국민연금 만두파동 등 사회분야에 이르기까지 가히 전방위적이다. 이러다가 인터넷상의 사이버 대한민국이 패러디 공화국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문제는 패러디의 수준이다. 잘 알려진 원작을 비틀어 새로운 메시지를 이끌어내는 패러디는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쟁점을 웃음으로 승화하면서도 핵심을 부각시키고, 비판적 시각을 길러주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패러디를 만드는 사람이 재미에만 초점을 맞추거나 편향된 인식을 갖고 있다면 패러디의 대상이 되는 개인이나 조직에 부당한 피해를 주게 되고, 보는 이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 박 전 대표와 특정 언론사의 공생()관계를 왜곡해서 묘사한 이번 박근혜 패러디가 바로 그런 예다.

하지만 패러디의 수준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청와대의 수준이다. 인터넷이 보편화된 시대에 저질 패러디를 근절하기가 쉽지 않다면 차선책은 저질 패러디를 가급적 유통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문제의 패러디를 14시간 동안이나 방치하고 전면에 내세우기까지 했다. 나중에 실수라고 변명했지만, 청와대 사람들 사이에 이런 것쯤이야 하는 인식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것도 이 정부가 내세우는 탈()권위의 결과 중 하나라면, 그런 식의 탈권위는 권위의 상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송 문 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