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달 28일 시작된 이란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최소 116명이 사망했다고 10일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이란 정부가 인터넷과 국제전화 등 외부 연결을 차단한 뒤 강경 진압에 나서 사상자 수는 크게 늘어날 수도 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시위대를) 도울 준비가 됐다”며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심각한 경제난에 미국의 개입 가능성까지 더해지며 이슬람교 시아파 성직자인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이란의 신정일치 체제가 47년 만에 붕괴 위기에 처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란 검찰총장 “시위 참여하면 사형 혐의”
로이터와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인권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이란 반정부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최소 116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란 당국의 강경 진압이 본격화되면서 전날 기준 65명에서 사망자가 약 2배로 급증한 것. 시위로 인해 체포되거나 구금된 사람도 2600명을 넘어섰다. 이란 정부가 8일부터 국제전화와 인터넷을 차단해 내부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시위 중 죽거나 다친 사람이 이보다 많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CNN, BBC 등이 입수한 영상을 보면 이란 당국과 시위대의 충돌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수도 테헤란 동부의 한 병원에선 시신들이 겹쳐 쌓인 모습이 포착됐다. 테헤란 서부에서 촬영된 영상에선 총에 맞은 것으로 보이는 최소 7구의 시신들이 주차장에 쓰러져 있었다. 거리 곳곳에 차량과 건물이 불탔다. 모스크가 화염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란 시민들은 인터넷 차단 우회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시위대 진압 참상을 전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는 “당국이 치명적인 무력 사용을 강화하고 있다는 참담한 보고를 분석 중”이라고 했다. 200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이란의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는 당국의 인터넷 차단을 겨냥해 “학살을 준비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이란 국영 매체들은 일부 시위대의 무장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란 관영 타스님 통신은 당국이 총기, 수류탄, 휘발유 폭탄 등을 소지한 시위대 약 200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부는 강경 진압 방침을 밝히고 있다. 모하마드 모바헤디아자드 이란 검찰총장은 “시위에 참여하면 누구든 신의 적으로 간주한다.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혐의”라며 “시위대를 도운 사람들도 같은 혐의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美, 이란 공습 예비검토 착수
미국은 이란 사태에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트루스소셜에 “이란은 어쩌면 과거 어느 때보다 자유를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도울 준비가 됐다”고 썼다. 그는 전날 백악관 행사에서도 “미국이 개입해 이란이 아픈 곳을 매우 세게 때리겠다”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군이 군사 대응에 대비해 예비적 단계의 논의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미군 당국자는 이란의 군사 표적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공습도 논의에 포함됐다고 WSJ에 말했다.
외신들은 이란의 신정일치 체제가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메네이는 이란을 ‘중동의 맹주’로 이끄는 지도자로 자신을 포장해 왔지만, 지난해 이스라엘-미국과 치른 12일 전쟁에 참패하면서 그의 권위가 크게 실추됐다. 또 오랜 기간 지속된 경제난이 이젠 중산층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면서 기존에 친정부 성향을 보여 온 상인들마저 하메네이 정권에 반기를 들고 있다. 중동 소식통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선 “막대한 원유와 천연가스, 비옥한 농업지대,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에서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느냐”는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또 시위대는 ‘팔레비 왕조 복귀’, ‘하메네이에게 죽음을’같이 현 체제 자체를 부정하는 구호도 외친다.
다만, 하메네이 체제가 당장 붕괴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 안보와 치안을 떠받치며, 다양한 공기업을 운영해 경제력도 막강한 혁명수비대 등 군부가 하메네이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혁명수비대는 정예군의 시위 현장 투입까지 검토 중이다. 반정부 투쟁의 구심점이 될 대안 세력이나 인물이 부재한 것도 반정부 시위의 동력이 계속 유지 및 확산되는 데 한계로 여겨진다.
유근형 noel@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