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고성능 칩 中 수출 허용… 美도 못 막는 中 ‘AI 굴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8일 “엔비디아 인공지능(AI) 칩 ‘H200’의 대중 수출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도 통보했고 긍정적 반응을 받았다고 했다. 미국은 이번 조치가 미중 관계 개선을 위한 조치인 것처럼 설명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산 고성능 AI칩 수출 통제가 자국 기업의 손해를 키우고, 중국의 ‘AI칩 굴기’를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는 판단 아래 어쩔 수 없이 내린 결정이라는 해석이 많다.

이번에 대중 수출이 허용된 H200은 엔디비아의 최신기술인 ‘블랙웰’ 기반 그래픽처리장치(GPU)보다 한 단계 낮지만, 이제까지 수출이 허용됐던 저사양의 ‘H20’에 비해 성능이 압도적으로 높다. 2022년부터 미국은 최첨단 AI 칩의 대중 수출을 통제했는데, 이번에 규제를 크게 완화한 것이다. 다만 ‘블랙웰’과 조만간 출시될 차세대 ‘루빈’은 허용 대상에서 빠졌다.

AI칩 대중 수출통제는 조 바이든 정부 때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AI 부문에서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벌리기 위해 시작됐다. 하지만 이후 중국이 자국 AI칩의 개발을 독려하고, 상당한 수준의 AI칩 양산에 성공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 정부는 새로 짓는 데이터센터에 캠브리콘 등 자국업체의 AI칩 사용을 의무화하고, 자국 칩을 쓰면 전기요금까지 깎아준다.

급해진 건 통제 전 매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던 중국시장을 잃게 된 엔비디아였다. 이 회사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산 칩을 못 팔면, 중국 AI칩의 자체개발 속도가 더 빨라져 미국에 손해라는 점을 설득해 이번 규제 완화를 얻어냈다. 그러나 이미 중국산 AI칩 개발로 무게중심을 옮긴 중국은 예전처럼 미국산 칩의 수입을 크게 늘리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한국 반도체기업에 이번 조치가 이득이 될 거란 분석이 있다. 하지만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미국이 먼저 통제를 풀어야 할 정도로 성장한 중국의 AI 경쟁력이다. 중국은 HBM 등 한국이 선두인 첨단 메모리반도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들과 1분 1초를 다투며 경쟁하는 국내 반도체 연구개발(R&D) 인력에 주 52시간제 예외를 인정하는 문제 하나 풀지 못하는 한국이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