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표 되는 공약이면 뭐든 베끼고 보는 대선후보들

표 되는 공약이면 뭐든 베끼고 보는 대선후보들

Posted January. 18, 2022 07:51   

Updated January. 18, 2022 07:51

中文

 대선후보들이 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만 서면 경쟁 후보의 공약이라도 서슴없이 가져다 쓰는 ‘공약 베끼기’가 도를 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난해 말 병사 월급을 200만 원으로 올리는 국방공약을 발표하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이달 ‘병사월급 200만 원’이라는 한줄 공약을 내놨다. 반대로 윤 후보가 지난해 8월 민간 재건축 용적률을 500%로 높이는 ‘역세권 첫집’ 공약을 제안한 지 5개월 만에 이 후보는 용적률 500%의 4종 주거지역 신설안을 밝혔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12일 한 강연회에서 내놓은 경인선 및 경인고속도로 지하화 공약은 이 후보와 윤 후보가 앞서 발표한 지역 공약과 겹치는 것이었다.

 제목 표절, 핵심 아이디어 표절, 전체 내용 표절 등 공약 베끼기가 하도 다양하게 이뤄지는 바람에 공약만 놓고 보면 누구의 것인지 알기 힘들 정도다. 대선 후보들이 남의 공약을 무차별적으로 베끼는 것은 정치 철학이나 소신 없이 지지율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정 지역이나 계층이 관심 있어 하는 정책을 공약으로 마구 끌어들이다보니 신규 공약이 자신의 기존 정책과 상충하는 자가당착도 나타나고 있다.

 베끼기와 짜깁기로 만든 공약이 남발되면 국가 전체적으로는 정책의 우선순위가 뒤틀려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된다. 대선 이후 당선자의 공약 중 상당수가 정권의 최우선 과제로 부각되면서 효율적인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게 되는 것이다. 부실 공약이 국가 핵심 정책으로 둔갑해 무리하게 추진되는 과정에서 재정과 자원의 낭비도 뒤따를 수밖에 없다.

 베끼기 공약이 남발되다 보면 한편으로는 집권 후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일도 생기지만 한편으로는 상당수 공약을 지킬 수 없는 문제가 동시에 생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밝힌 대선공약 완전이행률은 박근혜 정부 4년 차 당시 41%, 문재인 정부 임기 절반 시점 18.3%에 그쳤다. 공약이행 의지와 정치력 부족, 공약의 모호성 등이 저조한 실적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무엇보다 그 많은 공약을 처리할 물리적 시간과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베낀 공약이 기존 과제와 충돌한 결과 공약이 무산되고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은 정치권에 배신감을 느끼는 악순환이 반복되게 된다. 비전 없는 베끼기 공약 경쟁은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정치 불신만 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