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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영성

Posted March. 05, 2020 08:22   

Updated March. 05, 2020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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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시대에나 ‘문제적’ 작가는 있었다. 사회적 통념이나 규범을 깨는 작품으로 논쟁을 일으키는 예술가들 말이다. 16세기 매너리즘 미술을 대표하는 엘 그레코가 딱 그런 화가였다. 성서 이야기를 다룬 종교화를 많이 그렸지만 그의 그림은 교회와 신자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스 출신의 엘 그레코는 36세에 스페인 톨레도에 정착해 전성기를 누리며 400점 가까운 종교화와 초상화를 제작했다. 강렬한 색채, 길게 늘어뜨린 왜곡된 인체, 비범한 주제 접근 방식 등 그의 그림은 너무나 독창적이었지만 당시 사람들에겐 충격 그 자체였다.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가 주문했다가 거절한 이 그림은 성 마우리티우스 성인의 순교를 묘사하고 있다. 3세기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로마 병사였던 그는 이교도 의식을 거부해 처형당했다. 화면 오른쪽 병사 무리 가운데 인물이 바로 마우리티우스다. 튜닉 위에 초록색 망토를 두른 성인은 동료 병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고, 발가벗겨진 채 참수되는 가장 극적인 장면은 그림 왼쪽에 작게 그려져 있다. 그런데 목 잘린 시신 바로 뒤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남자도, 그 옆에 서서 그를 바라보는 병사도 모두 같은 성인이다. 이렇게 한 장면 안에 동일 인물이 네 번이나 등장하고 여러 시간이 합쳐져 있다 보니 당시 사람들에겐 무척 혼란스럽고도 이교도적인 그림으로 여겨졌다. 반종교개혁 시기의 스페인에서는 신앙심을 고취시키는 종교화가 장려됐고, 예술도 엄격한 검열과 통제를 받았다. 따라서 이 그림은 성인에 대한 연민이나 경외심은커녕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게 만드는’ 불온한 그림으로 간주됐다. 국왕의 거절은 당연한 것이었다.

 당시 미친 화가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엘 그레코의 작품은 역설적이게도 20세기 미술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의 말년 작 ‘요한계시록: 다섯 번째 봉인의 개봉’은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에 큰 영감을 주었다. 20세기 미술의 대표작이 사실은 16세기 종교화와 연결돼 있었던 것이다. 미술평론가


김성경기자 tjdrud0306@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