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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의 신상털기

Posted March. 19, 2014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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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내려앉으면 어김없이 휴대전화가 울려댄다. 집에 데려다주겠다는 문자가 서너 통, 심심할 때 찾아 달라는 문자가 두어 통, 힘들 때 전화하라는 문자가 또 한두 통.

이렇게 써놓으니 참 다정해 보이지만 실상은 대리운전, 게임, 대출 광고 문자메시지다. 날이면 날마다 스팸 번호를 등록하고 문자를 지워대다 보면 시쳇말로 영혼까지 털리는 기분이다.

근래 금융사와 통신사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로 시끄럽지만, 이미 일상 곳곳에서 개인의 신상 정보는 탈탈 털리고 있다. 특히 교육 현장의 신상 정보 수집은 어제오늘 일이 아닐뿐더러 유출의 경계마저 모호하다.

물론 1970, 80년대처럼 교사가 모두 눈 감고 집에 컬러텔레비전 있는 사람 손 들어라며 가정환경을 파악하던 시절은 지났다. 2011년 개인정보보호법이 시행된 이후 교육당국이 만든 개인정보 업무처리 사례집에 따르면 학교는 학부모의 수입, 재산, 직업, 직장, 학력 등의 수집을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아직도 각종 조사서식을 만들어 학부모의 신상 정보를 수집하는 관행이 남아 있다. 아이의 환경을 파악해 제대로 돌보기 위해서라고 하기엔 지나친 정보까지도 말이다.

서울 용산구의 한 놀이학교는 입학 지원서에 부모의 직업은 물론 직장 이름, 직위, 연봉 수준, 출신 대학과 대학원까지 적으라고 한다. 가정환경 스펙을 보고 애들을 가려 받는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한 지인은 몇 년 전 중학교에 들어간 자녀의 가정환경 조사서에 부모 직업을 구체적으로 쓰라기에 교육부 급 공무원이라고 적었다가 교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학교 과학실이 낡았는데 아버님이 도와주실 수 있죠?라는 물음에 요즘 세상이 투명해서요라며 진땀을 뺐다. 그 뒤로 그는 교육부 후배들에게 가정환경 조사서에는 무조건 중소기업 회사원이라고 적으라고 귀띔한다.

교육부는 지난해 7월 일선 학교의 개인정보 수집실태를 조사해서 사생활 침해 및 학생 차별과 같은 부작용을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올 신학기에도 이런 일은 되풀이되고 있다.

사교육 현장은 더 살벌하다. 아이에게 학습지 좀 시켜줄까 하고 몇 군데 상담을 받았을 뿐인데 어느새 다섯 살 아이에게 필요한 한방 영양제가 나왔습니다, 영어학원으로 오세요 같은 엉뚱한 우편물과 e메일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고교생 자녀를 둔 대구의 학부모는 서울의 한 입시업체에서 무료로 학습자료를 준다는 이벤트에 응모했다가 전화 공세에 시달렸다. 온라인으로 학교와 학년, 전화번호를 입력했더니 며칠 뒤 동네 보습학원에서 전화가 오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은 초등학교 앞에서 코흘리개 아이들을 붙잡고 엄마 전화번호랑 주소를 알려주면 장난감을 준다고 유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올해 초등학생 학부모가 된 친구는 동네 태권도장에서 끈질기게 전화를 걸더니 급기야 집까지 찾아오겠다고 하는데, 너무 무섭다고 했다.

교육 현장의 개인정보보호 불감증을 곱씹다 보니 문득 2월 국무조정실 주재로 열린 한 기자간담회가 떠오른다. 영유아 교육보육 통합에 대한 간담회라서 총리실,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여러 분야의 담당 기자들에게 참가 신청 공문이 돌았다. 그런데 참가 신청서를 들여다보니 기자의 출신 고교와 대학, 학과를 쓰도록 돼 있었다. 기자가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가 취재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를 일이었다.

정부부터 이렇게 쓸데없는 신상 정보를 모으는 판에 교육 현장에서 개인정보가 지켜지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