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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산사나이의 약속

Posted May. 31, 2005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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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의 딜레마라는 게임 이론은 두 범인이 상호 불신 때문에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결국 불리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이론이다. 두 명의 죄수가 경찰에 붙잡혔을 때 둘 다 범행을 자백하지 않기로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면 둘이 모두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먼저 배신해 가벼운 처벌을 받고 풀려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결국 둘 다 범행을 털어놓게 되거나, 약속을 어긴 사람은 풀려나고 지킨 사람만 형을 살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게임이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계속 사회에서 만나게 된다면 선택은 달라질 것이다. 게임이 한 번만 행해지고 끝난다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이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같은 게임이 반복된다면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람은 배신행위에 대한 사회적 응징을 당하게 마련이다. 인간관계란 바둑 또는 체스만큼이나 경우의 수(number of cases)가 무궁무진해 언제 어디서 어떤 처지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다.

약속을 하기도 잘 하고, 지키지도 않는 직업인으로는 정치인이 으뜸일 것이다. 못 지킬 줄 뻔히 알면서 국민과의 약속을 해 놓고 나중에는 상황 논리로 둘러댄다. 그 상황에서는 진실이었다거나,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는 변설()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약속 위반과 상황 논리의 변명이 거듭되다 보면 유권자들의 응징을 받게 된다. 정치세계에서도 게임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산악인 엄홍길 씨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하다 숨진 박무택 씨의 시신을 반드시 수습해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엄 씨는 1년 뒤 절벽에 매달려 눈사람이 된 박 씨의 시신을 찾아 목숨을 걸고 운구하다가 악천후 때문에 포기하고 임시 돌무덤을 만들어놓고 내려왔다고 한다. 산처럼 무거운 산사나이들의 약속은 이익을 따지는 게임이론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만년설()에 새겨진 산사나이들의 약속은 기온이 바뀌어도 녹아내리지 않는다.

황 호 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