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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바위 글씨

Posted March. 08, 2005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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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금강산을 다녀오면서 북한 정권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 세계적 명산()을 이만큼이나마 지켜냈구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바위 곳곳에 새겨진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어록과 선전 구호는 옥()에 티였다. 금강산에만 80곳에 4500여 자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북한이 2002년 2월 지도자 동지의 60회 생일을 맞아 금강산 바리봉에 새긴 천출명장김정일장군은 글자 하나가 최대 가로 25m, 세로 34m, 깊이 1.5m나 된다.

옛 사람들은 전국 명산과 계곡의 바위에 자기 이름과 글귀를 새겼다. 서울의 산과 계곡에도 옛 사람들이 새긴 80여 점의 그럴듯한 바위 글씨가 남아 있다. 자신의 이름 석자를 천년만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 탓이다. 금강산 같은 곳은 아예 석공()이 눌러앉아 산에 오르는 사람을 상대로 호객을 하고 품삯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글자체가 일정하다.

하지만 대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은 대장부의 이름은 사관()이 책에 기록해 두고 넓은 땅 위에 사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려야지, 돌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날아다니는 새의 그림자만도 못하다고 꾸짖었다. 대한제국 말 동행산수기()라는 걸작 탐승기를 남긴 이상수도 앞사람 이름 깎아 자기 이름 새기는 것은 남의 무덤 허물어 자신을 묻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바위나 나무에 이름을 새긴 사람은 그 대신 세상에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북한의 조선중앙TV가 최근 북한의 바위 글씨와 밧줄에 매달려 김일성 부자의 어록을 새기는 모습을 보도했다. 남쪽에서는 고작 18년 재임한 대통령이 쓴 친필 현판도 교체해야 한다며 난리 법석을 부리거나 도끼로 때려 부수는 판인데, 북쪽에서는 대()를 이어 60년 가까이 집권해도 충성이 넘친다. 하지만 글씨를 새기는 북녘 주민들이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서 이럴까. 통일 후에도 북의 바위 글씨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을까.

오 명 철 논설위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