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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금까지 파헤쳐진 흙가슴

Posted February. 17, 2005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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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게 미안하구나.

하동군 섬진강변 악양 벌판이 내려다 보이는 평사리 지리산 자락. 그 산중턱에 소설 토지의 최 참판 댁을 재현한 대가()를 보고 작가 박경리 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소설의 일관된 주제가 생명임을 감지한다면 산자락을 파헤쳐 지은 이 집을 보며 작가가 되뇌었을 이 말의 뜻을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으리라.

1370m 고갯마루 서면 지리 주맥이 도열한 듯

해발고도 1070m의 지리산 성삼재. 구례와 남원(산내면)을 잇는 험준한 산길(지방도 861번)이 지나는 백두대간의 마루금 고개다.

대간의 마루를 지나는 길이니 고갯마루에서 바라다 보이는 주변 풍치는 입소문을 탈 만도 할 터. 위로 노고단(1507m), 옆으로 고리봉 만복대를 잇는 지리산의 주맥이 또렷하고 먼발치로 보이는 산동(구례군)의 너른 땅 풍수도 기막히다.

그러나 산을 아끼는 이라면 이 지리산 관광도로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던지게 된다. 게다가 최근 서울대 박종화 교수팀의 조사에 따르면 관광도로 때문에 야생동물의 이동 경로가 단절돼 먹이사슬이 파괴되고 결국은 생태계가 교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관광도로가 지나는 성삼재를 출발해 백두대간의 마루금 밟으며 노고단에 올라 자연과 한데 어울리는 상생의 길을 찾는 것도 의미가 있어 백두대간 즈려밟기에 굳이 성삼재노고단 코스를 포함시켰다.

하동에서 섬진강변 19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면 악양 너른 들과 화개장터, 쌍계사 입구를 지나 구례 땅에 이른다. 여기서 지리산 관광도로 861번으로 갈아타면 천은사를 지나며 구절양장의 고갯길로 들어선다. 가파르고 험한 고갯길은 곡예에 가까운 정교한 운전을 요구한다. 겨울에는 결빙으로 통행중단도 잦아 사전정보 없이 찾았다가는 낭패를 보기 일쑤다.

그런데도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 간단하다. 하이킹 수준의 가벼운 등산으로 대산 지리의 백두대간 마루금도 밟아 보고 더불어 멋진 운해와 설경, 반야봉 천왕봉이 두루 등장하는 멋진 지리산경까지 두루 감상할 수 있는 노고단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노고단을 오르는 길은 두 갈래다. 노고단 대피소까지 이어진 도로 아니면 대간의 마루금 산길로 종석대(1356m)를 들러 오르는 코스다. 눈 덮인 시멘트포장도로는 경사도 완만해 이야기를 나누며 걷기에 좋다. 한 시간쯤 오르면 화엄사 등반로와 합쳐지는데 세 시간 이상의 고된 산행도 마다않고 오른 산꾼을 만날 수 있다. 대피소에 이르면 노고단 고개(1370m)는 지척(20분)이다.

나라 안녕 빌던 제사터엔 돌탑만 외로이

고개에 오르면 환호와 감탄의 말을 아낄 수가 없다. 정면의 반야봉이 지친 산객을 안아주고 주봉 천왕봉과 세석평전이 멀리서 눈인사를 건네는 풍경 덕분이다. 천왕봉까지 이어진 장장 32.3km의 지리주맥 백두대간을 한눈에 확인함은 물론이다. 노고단 정상은 고개에서 빤히 올려다 보인다. 그러나 생태계 훼손으로 통행을 막은 상태다.

고개에는 정상 것과 똑같은 돌탑(제단)이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여기가 정상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

노고단은 고려 조선시대에 나라의 안녕과 풍년을 비는 제사 터이자 국내에 흔치 않은 아고산()지대 초원. 7월 말8월 초 원추리와 동자꽃, 이질풀이 만개하는 고산화원. 지리 10경 중 노고운해는 한여름과 가을에 볼 수 있다.

여행정보

찾아가기=경부고속도로대전대전통영고속도로 함양경유=함양분기점88올림픽고속도로지리산 나들목60번 지방도마천산내861번 지방도반선성삼재휴게소 구례경유=장수 나들목19번국도남원광의(구례군)861번 지방도천은사시암재성삼재휴게소

산행 성삼재 휴게소노고단고개=2.3km(1시간1시간30분 소요) 노고단 고개정상=왕복 1.5km(1시간 소요)

문의 노고단(정상)탐방 예약=생태계 훼손이 심해 510월에 1일 4회(매회 100명)만 예약객에게 개방. 한달이틀 전 홈페이지 접수. 국립공원관리공단(www.npa.or.kr) 지리산 남부사무소=061-783-9100 노고단대피소=061-783-1507 구례 개인택시=061-783-5000

걸어서 노고단까지=생태계를 위협하는 지리산관광도로의 효율적 운영을 요구해온 지리산 생명연대(www.savejirisan.org)가 이 길을 자연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로 벌이는 걷기행사로 매년 10월에 연다.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