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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세월 머금은 낙엽의 속삭임

Posted November. 18, 2004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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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분수령(산이 곧 분수령). 산은 물을 가르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이 평범한 진리. 조선 후기 지리학자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산경표()에서 한 말이다. 이것은 우리가 요즘 즐겨 쓰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이라는 백두대간의 근간. 백두대간의 14개 산줄기는 여기서 비롯된다.

무릇 지리()라 함은 자연의 모습을 봄에만 있지 않고 그 자연으로 인해 결정된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이해하는 도구라는 데 초점을 맞춘 여암의 인문적 지리관은 그런 점에서 특별하다.

좌안동 우함양 선비의 고향

이 가을 막바지에 굳이 여암의 산경표까지 들먹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만추지정에 겨워 자연에 흠뻑 취해 보려는 이들에게 경남 함양의 위천 변 상림()숲을 소개하려니 우리에게 좀 생경한 함양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할 터여서다.

지리산 하면 대뜸 전라도 땅으로 떠올리지만 경남 함양도 지리산 자락이다. 산이 크면 골도 깊은 법. 산자분수령이란 말 그대로 섬진강변의 구례 남원 전라도 땅 말고 그 반대쪽,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적시는 산야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 땅이 경상도요 거기서도 지리산에 깃댄 고을이 바로 함양이다.

좌안동 우함양. 유학을 숭상하던 조선시대에 함양 땅은 비록 산골짝이기는 해도 서원과 향교가 허다한 선비의 고향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지리산 장터목으로 대표되는 동서 교역로의 경상도 쪽 배후다. 그래서 물산도 풍부하고 덕분에 인재 역시 풍부했던 모양이다. 그 함양의 젖줄은 위천. 상림은 그 위천의 물가에 있는 고요한 숲(6만평)이다.

이 가을 상림의 숲길은 가지에 걸린 바람 소리와 그 바람에 떨어져 쌓인 낙엽이 뒹구는 소리, 그 낙엽 밟는 소리와 함께 낙엽 비를 맞을 수 있는 국내 몇 개 안되는 평지의 숲이다. 1100년 전 신라의 최치원(857?)이 이곳(천령군) 태수로 와 조림했다는 이 천년의 숲은 한여름에는 냉장고만큼 시원한 그늘을, 가을에는 단풍과 낙엽의 진풍경을, 그리고 한겨울에는 멋진 설경을 선사하는 선인들의 선물이다.

큰 산 지리 유려한 능선 한눈에

함양읍을 떠나 지리산 칠선계곡의 벽송사 서암을 찾아 가는 길. 그 길에 오도재(해발 750m)라는 험한 고개를 넘는다. 아직도 도로지도에는 노란색(비포장)으로 표시돼 있지만 지난해 말 도로가 뚫렸다.

기는 뱀처럼 일곱 굽이를 이룬 지안치를 지나 정상을 넘어 내려가다 보면 지리산 조망공원을 만난다. 여기 서니 하봉 중봉 천왕봉은 물론 제석봉 세석평전 벽소령으로 이어지는 거산 지리의 유려한 마루금(능선)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지리산을, 아니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이렇듯 한눈에 펼쳐놓고 볼 수 있는 자동차도로가 과연 또 있을까.

고개 아래는 마천면 의탄리. 서암은 다리 건너 칠선계곡 입구 도로의 왼편 산중턱에 있다. 주지 원응 스님이 원력을 세워 지난 40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여러 석공과 더불어 이룬 이곳은 암굴형의 바위벽에 새겨 넣은 수많은 부처, 보살, 나한의 정교한 조각이 백미다.

여행정보

상림=대전-통영고속도로함양 분기점88고속도로함양 나들목

서암=함양읍24번국도(마천 방향)1023번 지방도지안치(지그재그 고갯길)오도재지리산 조망공원의탄교(마천면)칠선계곡추성리

함양군청(www.hamyang.go.kr)=055-960-6114

지리산 조망공원=오도재 휴게소 055-964-0009



조성하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