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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입증 단서된 챗GPT… ‘약물 살인’ 20대女, 범행前 질문 기록

범죄입증 단서된 챗GPT… ‘약물 살인’ 20대女, 범행前 질문 기록

Posted February. 27, 2026 09:25   

Updated February. 27, 2026 09:25


“훔친 돈을 (투자) 리딩방 피해 계좌에 넣으면 경찰이 리딩방 사기 사건을 수사할까?”

22일 오전 6시 경 경기 평택시의 한 컴퓨터 부품 판매점에 침입해 수천만 원어치의 고가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훔친 40대 남성은 범행 전 인공지능(AI) 서비스인 ‘챗GPT’에 이 같이 물었다. 이에 챗GPT는 “당신이 절도 혐의로 검거되면 경찰이 리딩방 사기 사건도 함께 수사할 것”이라 답했다. 실제로 절도 혐의로 검거된 그는 경찰 조사에서 “챗GPT의 답변을 보고난 뒤 경찰이 리딩방 사건을 빠르게 수사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절도로 발각되더라도 자신이 피해를 입은 투자 사기를 경찰이 해결해줄 수 있다는 판단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

이처럼 최근 범죄자들이 AI에 남긴 대화 내역이 수사의 중요 단서가 되고 있다. AI 검색 기록은 단순히 ‘무엇을 찾았는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범죄자의 생각과 의도, 심리 상태까지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AI 검색 기록은 텍스트 기반이어서 일부 데이터가 손실됐더라도 포렌식을 통해 상당 부분 복구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수사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공범이 된 AI…범행 동기까지 털어놔

최근 서울 강북구에서 발생한 ‘모텔 약물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피의자 김모 씨에게 적용한 기존 상해치사 혐의를 살인으로 변경한 배경에는 김 씨의 챗GPT 질문 기록이 있었다. 김 씨의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 챗GPT에 “얼마나 많은 약물을 복용해야 위험한지” “실제 사망할 수 있는지” 등 약물의 위험성을 여러 차례 묻는 흔적이 확인된 것이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한 여성이 챗GPT에 독극물 관련 정보를 물어본 뒤 남편을 독살하려 한 혐의로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같은 달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대형 산불을 일으킨 한 용의자가 범행 전 챗GPT에 불타는 숲 이미지를 생성해 달라고 요청하고, 방화 직후 “담배를 피우다 불이 나면 내 잘못인가”와 같은 취지의 질문을 남긴 정황이 확인됐다. 모두 AI와의 대화 기록이 범행 동기를 보여주는 정황 증거가 된 사례들이다.

이처럼 최근 수사 현장에선 AI와의 대화 기록이 기존 포털 검색 기록과 다른 차원의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정 단어를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는 것과 달리 AI와의 대화는 정보를 좁혀가는 과정이 기록으로 남아 이용자의 관심사와 사고 흐름을 파악하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정두원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는 “챗GPT는 작성자의 대화 목적성이 비교적 직접적으로 드러나 수사상 더 유의미한 자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포렌식 복구에 공들이는 수사기관

현장에서도 챗GPT 등 AI 검색 기록 분석은 이미 다양한 사건 수사에 활용되는 단계다. 이민형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은 “지난해 가을 한 사망자의 휴대전화에서 챗GPT와의 대화 내용에 우울증 등 정황이 담긴 흔적이 남아 있어 사망 배경을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된 사례가 있었다”고 했다. 당사자의 의도를 직접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AI에 남은 대화 기록이 하나의 정황 자료가 된 것이다. 이 전문위원은 “이미 일반적인 수사 과정에서 AI 검색 기록은 주요 관심 대상이 됐다”고 했다.

특히 AI 검색 기록은 포렌식을 통해 확보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파일이 손상되면 복구가 쉽지 않은 영상이나 이미지와 달리 텍스트 데이터는 삭제돼도 복구가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준형 플레이비트 센터장은 “복구율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텍스트 데이터는 복구율이 높다”며 “수년 전 AI와 문답을 주고 받은 기록이라 하더라도 복구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또 챗GPT 질의 기록이 재판에서 실질적 증거로 채택될 수 있을지를 두고도, 법학자들은 매체만 달라졌을 뿐 기존 검색 기록 증거와 법리적으로 본질적인 차이는 크지 않다고 본다. 권양섭 국립군산대 법학과 교수는 “구글 검색어가 법원에서 증거로 활용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처럼, 챗GPT에 프롬프트를 입력한 행위 역시 법적으로 유사하게 해석될 여지가 크다”며 “쟁점은 실제로 그 사람이 입력했느냐는 점인데, 휴대전화 사용 정황 등과 결합되면 증거로 채택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앞으로 AI 포렌식을 고도화하려는 수사기관과, 수사망을 피하려는 범죄자들의 ‘안티 포렌식‘이 맞물리며 추적과 회피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본다. 챗GPT를 범죄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웹브라우저의 시크릿 모드를 쓰고 기록을 즉시 삭제하거나, 컴퓨터를 포맷하는 등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경향이 늘 수 있다는 것이다. 정두원 성균관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는 “AI 포렌식의 성과가 알려질수록 범죄자들이 우회 사용법을 찾으려는 시도가 많아질 것으로 보이는 데 수사 당국도 포렌식 기술력을 높여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승연 기자 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