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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 아파트’에서?

Posted June. 17, 2024 08:02   

Updated June. 17, 2024 08:02


가끔 금요일에 쉴 때면 어린이집이 끝나는 오후 4시에 두 딸을 데리러 간다. 그때마다 아이들의 다음 목적지는 놀이터다. 40년 넘은 우리 아파트의 낡은 놀이터가 아니라 길 건너 신축 아파트의 새 놀이터다. 우레탄이 깔려 있고 큰 미끄럼틀이 있고 연못에 우렁이도 산다.

그런데 그 아파트는 단지 안팎에 철제 울타리가 세워져 있다. 밖에선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고 안에선 버튼을 눌러야 나올 수 있다. 일부 출입구는 반대로 안에서 비밀번호를 눌러야 나올 수 있고 밖에서 버튼을 눌러야 한다.

아파트 울타리는 여러 가지를 상징한다. 아파트를 세우는 데 들었을 막대한 비용과 높은 분양가, 치안과 사생활 우려, 한 울타리 안에 산다는 동질감과 그 밖에 대한 이질감까지…. 최근 서울의 한 아파트는 입주민끼리 사돈을 맺자며 혼사까지 주선하고 나섰다.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건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비슷하다는 뜻이고 그래서 따져볼 것이 줄어든다는 계산일 것이다. 저출산 비혼 시대에 이런 시도라도 어디냐고 볼 수 있지만 뒷맛은 씁쓸하다.

대단지 아파트 안에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물론 학교도 있다. 그래서 친구 대부분이 같은 아파트에 산다. 평생의 반려자까지 아파트에서 찾는 세상이라면 나중에는 그 이상도 가능하지 않을까. 같은 병원에서 태어나 같은 초중고교를 다니고 잠시 단지를 나가 대학을 마치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와 가정을 꾸리고 늙어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러다가 입주민 전용 화장장이나 봉안당까지 들어서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아파트는 단순한 집 이상이다. 서울시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아파트에 사는 기혼 여성은 단독주택이나 연립, 다세대 주택에 살 때보다 아이를 낳겠다는 의사가 더 높았다. 통계청 3월 발표에 따르면 가계 평균 자산 중 78.6%는 부동산이다. 아파트는 출산 인프라이자 전 재산이고 자신의 위치와 공동체를 규정하는 존재다. 그 안에 삶의 반경이 묶인 것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국민 중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51.9%로 절반에 불과하다. 다른 절반은 단독주택, 빌라 등 다양한 주거지에서 거주한다. 아파트에 집착하는 게 미래에 대한 불안과 심각해지는 양극화, 삶을 위협하는 불확실성에 스스로를 단지 안에 가둔 건 아닐까.

두 딸과 찾은 놀이터에선 울타리와 상관 없이 인근에 사는 아이들이 섞여서 놀았다. 다른 아파트에 사는 아이, 빌라에 사는 아이도 약속한 듯 오후 4시 새 아파트 놀이터에 모여들었다. 같이 뛰고 킥보드를 밀었다.

물끄러미 지켜보는 사이 어둑어둑 해가 졌다. 슬슬 집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나오는데 놀이터 옆 출입구는 비밀번호를 눌러야 나갈 수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할 때 딸과 친구들이 우르르 철문 옆 덤불 뒤편으로 뛰어갔다. “아빠, 일로 와”라는 말을 듣고 따라갔더니 작은 개구멍이 있었다. 아이들은 잽싸게 그 틈으로 빠져나가 의기양양하게 철문을 열고 씨익 웃었다. 적어도 그 아파트에서 어른들의 울타리는 아이들에겐 무용지물이었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손을 흔들고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