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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형태

Posted March. 15, 2021 07:23   

Updated March. 15, 2021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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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슬픔과 소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편린들과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 나름의 믿음 따위를 묘사하도록 해보십시오. 이 모든 것들을 다정하고 차분하고 겸손한 솔직함으로 묘사하십시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고드름이 무섭게 달리는 겨울 아침, 휘갈겨 쓴 눅눅한 일기장,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 짧아진 4B연필, 김장하는 엄마와 할머니, 담장 들장미들의 연둣빛 가시, 할머니의 때를 미는 엄마의 등허리, 쿰쿰한 할머니의 살 냄새, 죽은 할머니의 얼굴에 얼굴을 부비는 엄마, 슬픔을 묘사한다면 이런 뒷모습들일까.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묘비에 적혀 있듯이 릴케는 장미를 사랑했다. 그는 장미 가시에 찔려 파상풍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주 작은 가시에 찔린 상처로 죽었다니, 사소한 죽음, 사소한 슬픔이라니.

 나의 첫 시집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가 세상에 나왔을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슬픔이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슬픔은 기쁨과 한 몸으로 이루어져 있고, 슬픔의 실존을 느낄 때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고, 그렇게 우리는 점점 인간에 가까워진다. 작은 점에서 사람으로 자라나 팔과 다리로 세상을 딛고 보고 만지며 느끼고 인간이 가진 두 개의 날개, 즉 두 개의 귀로 슬픔을 들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울음이 어리광이 되는 나이에 대해, 숨이 끊긴 사람이 더 이상 입을 가지지 못한 존재의 앎, 이제야 ‘나’를 있게 해준 ‘존재와 상실’을 듣는다.

 할머니 무덤가에서 흰 목련들이 흔들릴 때, 그저 엎드려 울 수밖에 없음에 대해, 엄마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릴 때, 창 밖 가로등 아래 반짝이는 눈송이에 대해, 순수한 모순 덩어리가 가득한 이쪽 면과 저쪽 세상에 대해…. 우리는 빛의 편린으로, 슬픔이 오는 방향으로 슬쩍 걸터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