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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족 스프린터’는 다시 달릴 수 있을까

‘의족 스프린터’는 다시 달릴 수 있을까

Posted November. 06, 2020 07:42   

Updated November. 06, 2020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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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에서 사용되는 장비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최근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의족 스프린터’ 블레이크 리퍼(31·미국)의 내년 도쿄 올림픽 출전을 불허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양쪽 무릎 아래가 없었다. 리퍼는 생후 9개월부터 부모가 마련해준 의족을 신고 지냈다. 어려서부터 아빠와 함께 농구 야구 등 다양한 운동을 즐겼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인 달리기를 시작했다. 당시 의족 기술의 발달 덕분이었다. 뛰어난 운동신경을 지닌 그는 미국 패럴림픽 육상 대표 선수가 됐고 2012 런던 패럴림픽 400m 은메달과 200m 동메달을 땄다.

 이후 그는 패럴림픽이 아닌 올림픽에서 장애가 없는 선수들과 겨루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세계육상연맹이 “의족을 사용하지 않는 다른 선수들과 공정한 경기가 될 수 없다”는 취지로 올림픽 및 각종 대회 출전을 막자 CAS에 제소했다. 세계육상연맹은 리퍼가 사용하는 의족이 패럴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의족 크기 제한 규정을 벗어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르면 선수 등급에 따라 쓸 수 있는 의족의 최대 크기가 정해져 있다. 세계육상연맹은 리퍼가 사용하는 의족이 이 규정이 허용하는 최대치보다 15cm를 초과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바탕으로 CAS는 리퍼가 장애가 없이 태어났을 경우 추정되는 키보다 더 큰 키를 이용하게 되기 때문에 장애 없는 선수들과 경쟁할 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봤다. 리퍼의 400m 개인 최고 기록은 44초30으로 장애가 없는 선수들의 기록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

 이 판결에 대해 리퍼는 ‘인종 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흑인인 그는 현재 패럴림픽 등에서 쓰이고 있는 의족 관련 규정은 백인과 아시아인의 신체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흑인 신체 비율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육상연맹은 리퍼의 주장은 음모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 판결은 두 가지를 떠올리게 했다. 하나는 올림픽 출전의 꿈이 좌절된 그의 안타까움이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벌어져 온 올림픽 장비 논란이다.

 올림픽에서 인간의 능력이 아닌 장비의 성능이 우선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란은 계속 있어 왔다. 이를 반영한 대표적인 사례가 1996년 국제사이클연맹(UCI)이 발표한 ‘루가노 헌장’이다. 이는 당시 영국과 미국 등이 올림픽 메달을 따기 위해 천문학적 돈을 들여 ‘슈퍼바이크’ 제작에 뛰어들자 지나친 개발 경쟁을 막기 위해 마련됐다. 이 헌장은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자전거의 프레임을 전통 삼각형 형태로 제한하고 무게도 6.8kg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특수 소재를 사용해 가벼우면서도 공기역학을 적용한 온갖 모양의 자전거가 등장하자 제동을 건 것이다. 첨단 자전거를 개발할 수 없는 가난한 국가들이 장비 경쟁에서 뒤처져 결국 올림픽을 포기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국제수영연맹(FINA)이 한때 세계를 휩쓸었던 전신 수영복을 금지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각종 기술 발전의 결과를 스포츠에 도입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제는 말 그대로 ‘입는(wearable)’ 기기들도 나오고 있다. 후일 더 큰 기술의 발달로 일부 기기가 사람의 몸에서 뗄 수 없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된다면 그때에도 그 장치의 경기 사용을 금지할 수 있을까.

 이런 점은 스포츠 종목 정체성 및 규정에 대한 세분화를 예고하고 있다. 학자들은 이런 추이가 계속된다면 기기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인의 경기’ 및 웨어러블 기기를 허용하는 다른 형태의 경기로 스포츠가 분화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명쾌하게 나눌 수 없는 중간 형태도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리퍼에 앞서 또 다른 의족 선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34·남아프리카공화국)가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전례가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올림픽 출전이 허용되고 리퍼는 불허됐다. 결과는 상반됐지만 의족 선수들의 올림픽 진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비록 리퍼의 도쿄 올림픽 출전을 불허하기는 했지만 CAS가 세계육상연맹을 향해서도 “장애가 있는 선수들이 다른 선수들과 함께 경쟁할 수 있는 명확한 규정과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한 점은 그래서 주목해야 한다. 기술 발전과 함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경쟁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시대 추세인 것이다.


이원홍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