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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이 김선달 탄산수 장사

Posted August. 20, 2015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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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나가면 영어로 음식 주문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햄버거를 주문해도 점포 안에서 먹을 것인지(for here), 가져갈 것인지(to go)를 묻는다. 커피와 맥주를 시키면 어떤 종류를 원하는지 꼬치꼬치 질문한다. 마음 편히 물이나 한 잔 마시려 해도 종업원이 또 묻는다. Sparkling or still? 허걱, 이건 또 무슨 소리? 탄산수를 마실 것인지, 그냥 생수를 마실 것인지 묻는 간단한 표현에도 실전 영어가 약한 여행객들은 난감하다.

TV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여주인공 천송이(전지현 분)는 실연의 아픔을 잊으려 술을 마신 뒤 다음 날 숙취 해소를 위해 냉장고의 디스펜서 버튼을 눌러 물을 받아 마신다. 냉수 마시고 속 차리는 데도 천송이는 달랐다. 탄산수를 뽑아 마셨으니까. 스타일에 민감한 시청자들이 이런 대목을 그냥 넘길 리 없다. 정수한 물을 탄산수로 만드는 기능을 갖춘 냉장고와 탄산수 자체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과 매출이 부쩍 높아졌단다.

탄산수의 거품이 톡톡 터지는 것 같은 상큼발랄한 이미지가 한국에 걸맞다고 한국관광공사는 판단한 모양이다. 한국 관광의 브랜드로 Korea, Sparkling을 정하고 2007년 11월 미국 뉴욕에서 각국 외교사절들을 대상으로 한복 패션쇼, 비보이 공연, 한식 만찬 등 한류를 홍보하는 행사도 열었다. 하지만 탄산수 광고를 연상시키는 표현이 과연 한국을 알리는 데 적합한지를 놓고 논란이 적지 않았다. 결국 정권이 바뀌면서 이 표현을 쓰는 것은 기포가 꺼지듯 흐지부지됐다.

물을 사 먹는 시대가 열린 게 얼마 전인 듯한데 어느새 탄산수 시장까지 급성장했다. 젊은 층에선 특히 수입 탄산수의 인기가 높다. 여성소비자연합에 따르면 이탈리아 산펠레그리노 탄산수의 국내 시판가는 현지보다 7.9배 비싸고, 다른 수입 탄산수도 맛과 효능에서 별 차이가 없는데도 국산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조사됐다. 대동강물을 팔아먹은 김선달이 탄산수 물장수로 둔갑한 모양이다. 한국 소비자들만 수입 탄산수의 봉 노릇을 하는 것 같다.

한 기 흥 논설위원 eligius@donga.com